“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지사적·예언자적 어조로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민족시의 정화(精華)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의 ‘광야’이다. 투철한 역사의식이 투영된 그의 이 시는 국조(國祖) 단군을 생각나게 한다.

10월 3일은 4356번째 맞는 개천절이다.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뜻이며, ‘단군왕검’이 이 땅에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단군의 건국이념은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리라는 ‘재세이화(在世理化)’이다.

‘단군정신’은 우리나라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일제강점기에 단군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했고,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의 정신적 동력이 되었다. 개천절을 보내며 ‘나’와 ‘너’가 아닌 ‘우리’를 지향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바탕으로 국민통합과 국가번영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육사는 일제 암흑기의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4년 경북 안동에서 이가호와 허길 사이에서 6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 본명은 원록(源祿)·원삼(源三)·활(活), 자는 태경(台卿), 아호는 육사(陸史)이다. 조선의 대표 유학자인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저항정신은 전통 유학이 기반이 된 ‘선비정신’에 그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다섯 살부터 조부인 이중직에게 소학을 배웠고, 일곱 살 무렵에는 한시(漢詩)를 지었다. 15세에 ‘흉중 오천 권’으로 표현할 정도로 고전을 통달한 것이 후일 그의 문장을 탄탄하게 했다. 17세에 대구로 이사하여 교남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이듬해에 영천 부호 안용락의 딸 안일양과 혼인하였다. 스무 살 이후 일본 니혼(日本)대학 전문부, 중국 중국대학(中國大學) 상과에 다니면서 동아시아의 문인들과 교류했다.

스물두 살에 형 이원기, 동생 이원유와 함께 의열단에 가입, 북경을 왕래하며 국내정세를 보고하고 군자금을 전달하였다. 그러던 중 1927년 10월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좌, 3년 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이때 그의 수인(囚人) 번호가 264번이어서 호를 육사(陸史)로 하였다.

26세이던 1930년 초에 첫 시 ‘말(馬)’을 이활(李活)이란 이름으로 조선일보에 발표했다. 1932년 4월 난징에 있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1기로 입교하였고, 그해 6월 루쉰을 만나 동양의 정세를 논하였다. 이듬해 9월에 귀국하여 시작(詩作)에 전념, 육사란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4년부터 언론기관에 종사하면서 시 외에도 한시와 시조, 논문, 평론, 번역, 시나리오 등에 재능을 나타냈다. 육사의 작품은 시가 40편, 수필이 14편인데 하나같이 주옥같은 글들이다. 그의 시는 식민지하의 민족적 비운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 의지를 나타내고, 광복의 열의와 복국의식(復國意識)을 장엄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40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17차례에 걸쳐 옥살이했다. 1944년 1월 북경 감옥에서 순국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꿈, 광복을 끝내 보지 못한 채. 1946년 <육사시집>이 발간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위대하게 불타오른 애국지사의 표상으로 우리 민족에게 한없는 용기와 희망을 심어준 육사의 시는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다. 꺼지지 않는 민족정신을 노래한 선생의 초인적인 삶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超人叔季遠村生(초인숙계원촌생) 초인이 쇠퇴한 세상에 안동시 원촌리에서 태어나

淸白其懷㤠士行(청백기회열사행) 곧고 깨끗한 그 마음으로 독립열사의 길을 걸었네

慷慨失魂經史涉(강개실혼경사섭) 민족혼을 잃어 강개한 마음 경서와 역사를 섭력했고

悲嘆亡國筆鋒幷(비탄망국필봉병) 나라가 망함을 비탄하는 필봉을 오로지했네

英英廿卅陰沈痛(영영입삽음침통) 빛나는 20~30대에 음침한 (감옥에서) 고통당했고

秩秩擧皆陽復聲(질질거개양복성) 거의 모두 질서정연한 광복의 외침을 노래했네

曠野殺身先正後(광야살신선정후) 광야(감옥)에서 순국한 이퇴계 선생의 14대 후손은

成仁永久以詩鳴(성인영구이시명) 인을 이루어 영원토록 시로써 소리를 내었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