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 시정소식지 <더 남양주>

봉선사 월초스님과 운허스님의 

애국충절

남양주시에는 국가를 위해 독립운동과 
6.25전쟁에 기꺼이 참여한 인물들이 많다. 
그중에서 월초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독립투쟁의 정신과 
운허스님의 독립투쟁 활동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광릉숲에 자리 잡은 봉선사의 독립투사, 
월초스님과 운허스님의 이야기를 돌아본다.

정리_남양주시 시정소식지 <더 남양주> 편집실  

사진제공_봉선사

 
 
월초스님 / 봉선사의 옛 전경

독립정신의 시작, '월초스님'
봉선사는 월초스님이 주석(승려가 입산하여 안주함)하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월초스님은 남한총섭* (南漢摠攝, 1892년)과 북한총섭(北漢總攝, 1893년)을 지내며 전국 사찰의 승군(僧軍)을 지휘했다. 사실상 당대 조선불교를 대표하는 지도자였다. 하지만 외세의 침탈로 국운이 기울면서 월초스님은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과 불교를 기반으로 호국(護國)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진력을 다했다.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명진학교’를 설립해 초대 교장·이사장을 맡았고, 개운사 대원강원 후원, 사재를 털어 봉선사 홍법강원의 설립 자금을 댔다. 월초스님의 애국정신을 본받아 독립운동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임했던 2명의 제자가 바로 운허(耘虛) 이학수(李學洙·1892~1980년)와 운암(雲巖) 김성숙(金星淑·1898~1969년)이다.
* 승군을 통솔하는 승직

 

 

운허스님

독립운동을 진두진휘한 '운허스님'
운허스님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경찰의 추격에 몸을 피하기 위해 1921년 '박용하'라는 가명으로 불교에 귀의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원래 이름은 ‘이학수’였지만 항일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대종교에 입교하면서 이름을 ‘이시열’로 바꿨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인 운허스님은 1911년 대종교에 입교하는 동시에 비밀결사대 '대동청년단'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랴오닝성 신빈현 왕청문에서 동지들을 규합해 등사판 ‘경종(警鐘)’을 발행하고, 당시 남만주 독립운동 중심지인 유하현  삼원보에서 군정부에 가담해 기관지 ‘한족신보(韓族新報)’를 간행한다. 
1920년에는 독립운동기관으로 유명한 광한당(光韓團)을 조직하면서 애국투사들을 이끈다. 독립운동의 핵심인 운허스님을 잡으려고 일본 경찰이 나서자 귀국해 1921년 강원도 회양군 봉일사(鳳逸寺)에 은신하면서 8년간 불교에 전념한다. 그 뒤에도 운허스님은 1929년엔 다시 만주로 건너가 봉천성 보성학교 교장을 맡았고, 같은 해 겨울부터는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에 가입해 더욱 치열한 독립운동에 돌입한다. 그러다 만주국이 건립돼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1936년 월초스님의 유촉(遺囑·죽은 뒤의 일을 부탁함)에 따라 불교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낸다.

운허스님이 쓴 한글편액 봉선사 ‘큰법당’.

운허스님은 해방 이후에는 계몽·개혁으로 시선을 돌린다. 해방 이후 많은 독립운동가가 귀국하지만 전 재산을 내놓으니 생활이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교육 환경은 열악했고, 독립투사의 애국정신 맥도 이어야 했다. 그렇게 1946년 탄생한 학교가 ‘광동학교’다. 그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데 집중하면서 불교 대중화에 열정을 쏟았다. 그리고 불경 한글화의 취지를 살려 봉선사의 대웅전을 한자편액이 아닌 ‘큰법당’이라는 한글로 이름 지었다. 우리나라 사찰 법당 가운데 최초의 한글편액인데, 놀라운 파격이었다. 독립투사에서 불교대중화를 이끈 운허스님은 그렇게 대한민국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다 1980년 열반하셨다. 

 

남양주시에는 현충기념비 12개가 존재하는데, 
이 기념비들은 일제시대에 항거하는 독립투사들과 
6.25 전쟁으로 안타깝게 생명을 잃게 된 
국군장병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남양주시에 있는 기념비를 소개한다. 

정리_편집실

 
 

① 소래 김중건 선생 기념비
건립일 1983년 10월 16일 

김중건(金中建·1889~1933년)은 함남 영흥 사람으로 1928년 만주 지역 동포 사회에서 조선민사(朝鮮民社)·농우동맹(農友同盟)·진우회(震友會) 등을 조직하여 농촌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3월 그를 시기하던 공산주의자에 의해 피살되었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 산85-12
       (영흥임원내)

 

② 3.1운동애국선열추념탑
건립일 1994년 8월 15일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있는 용진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3·1운동 참가자 및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애국선열 추념탑이다. 용진교회 이정성 장로, 김현모, 김정하 등은 경진학원 교사, 교회 청년들과 함께 3월 14일 경진학교에서 사용 중인 일장기로 태극기를 제작했다. 3월 15일 이른 아침부터 이들은 교회 신도와 동리 주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692
       (송촌초교 앞)

 

③ 순국선열추념비
건립일 1985년 11월 15일

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돼가던 1919년 3월 18일 당시 화도면 마석우리에서 이달용의 주도로 강선원, 김필규 등 200여 명이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일본 헌병이 시위자를 검거하자 시위대는 헌병대 병참으로 몰려가 구속자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자 헌병이 발포하여 이달용, 손복산, 신영희, 유상규, 이교직은 순국하고 김필규는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복역 중 순국하였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 292 -2 
       (구 화도읍사무소 입구)

 

④ 화도3·1운동기념비
건립일 1993년 3월 1일

화도 3·1운동을 주도한 김필규 목사 외 7명의 독립운동가의 공적과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화도면의 독립만세운동은 이달용 등에 의해 추진되었으나, 3월 16일 사전에 발각되어 다수의 주도 인사들이 일경에 붙잡히게 되었다. 월산교회 목사 김필규(金弼圭·1874~1919년) 등은 3월 18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만세 시위를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밤 답내리·월산리 주민들이 총궐기하여 마석우리 병참 앞으로 몰려가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답내리 555-7
       (월산교회 내)

 

⑤ 3·1운동기념비
건립일 1999년 2월 6일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돼가던 1919년 3월 18일 밤 월산리·답내리 주민 200여 명이 마석우리 헌병대 병참 앞에 몰려가 피검자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그러자 일본 헌병이 발포하여 손복산, 신영희, 유상규, 이교직, 이달용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강선원, 권은, 김필규 등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경춘로 2226
       (화광중학교 교내)

 

⑥ 미 제25사단 한강도하기념비
건립일 1986년 3월 7일

미 제8군이 1951년 3월 7일부터 서울을 재탈환하기 위한 리퍼작전을 실시하였다. 서울을 재탈환하기 위하여 감행한 한강도하작전에 참전한 미 제25사단 용사들 덕분에 유엔군은 1951년 3월 15일 격전이나 희생을 치르지 않고 서울을 재탈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적을 기리고 후세에 알리고자 건립했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산194-16

 

⑦ 남양주시 현충탑
건립일 1981년 1월 1일

남양주시는 6·25전쟁 당시 조국과 자유 수호를 위하여 장렬히 전사한 미금시 출신 장병 83위와 남양주시 장병 144위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호국보훈의 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하여 현충탑을 건립하였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산73-8
       (남양주시현충탑공원)

 

⑧ 호국 6·25 참전유공자 상 및 탑
건립일 2006년 12월 15일

남양주시 일패동에 6·25전쟁에서 사망한 남양주시 출신 전몰군경과 참전유공자의 호국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호국 6·25 참전유공자 상 및 탑’을 건립하였다. 6·25전쟁에서 남양주 시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의 침략에 맨주먹으로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가 조국을 지키다가 전사 또는 부상당하였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산73-8
       (남양주시현충탑공원)

 

⑨ 해병대 북한강지구 전첩비
건립일 1987년 12월 10일

북한강지구 전투는 1950년 9월 28일 서울 탈환의 대위엄을 완수한 한국해병대가 수도권 안전 확보를 위하여 같은 해 10월 1일부터 7일까지 망우리고개에서 경춘가도를 따라 북한강 방향으로 공격을 실시하였으며, 10월 2일 현 전적비가 있는 일대에서 재침공 준비 중인 북괴군 1개 연대와 치열한 격전 끝에 적 사살 200명, 포로 50명을 포획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적을 격퇴하고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을 개시, 38선을 돌파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전투다. 이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산73-8
        (남양주시현충탑공원)

 

⑩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구국충혼비
건립일 2020년 6월 17일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불법 남침하자 육군사관학교 1, 2기 생도들이 전쟁에 참여했으나, 북한군을 피해 한강 이남으로 내려가던 중 생도 13명이 불암산 일대에서 7사단 9연대 소속 7명을 규합하여 암호명 ‘호랑이’로 유격대를 결성하였다. 유격대는 총 4차례 공격 작전을 시도하여 북한군에게 큰 피해를 주었으며, 북한으로 끌려가는 주민 100여 명을 구출하는 등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역사상 유례없이 계급과 군번이 없는 사관생도 신분으로 적 후방에서 싸웠던 유격대원들은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기 직전에 안타깝게 모두 전사하였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산97
        (불암산 입구)

 

⑪ 진접읍 3.1운동 기념비
건립일 1999년 5월 20일

서울에서 3.1만세 운동 소식을 들은 봉선사 승려 김성숙(운암스님)은 평소 뜻을 같이 한 이순재(지월스님), 강완수, 김석로, 현일성과 함께 봉선사 서기실에 비밀리에 조선독립단임시사무소를 개소하고 3월 30일 주재소 앞 광릉천변에 주민 1천여 명과 모여 1차 만세운동을 벌였다. 31일 광릉천 자갈밭에서는 이재일, 최대봉, 박성봉, 최대복, 유희상, 이흥록, 최양갑, 양삼돌을 비롯한 100여 명이 2차 만세운동을 벌이다 다수가 체포되었고, 금곡리에서도 청년 13명을 주축으로 400여 명이 모여 만세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15-1
       (진접중학교 교내)

 

⑫ 남양주시 호국무공수훈자 공적비
건립일 2004년 8월 11일

남양주시 출신으로 6·25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세계 평화와 자유 수호를 위해 무공을 세운 무공수훈자와 국가안전보장에 크게 이바지하여 보국훈장을 받은 자의 공로를 기리고 국민의 애국정신을 함양하며 후세에 전하고자 호국무공수훈자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 산3073-1

 

위의 내용은 " 남양주시 시정소식지 <더 남양주> "에서 옮겨 왔습니다.  남양주시 많이 사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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