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정책 대전환과 최명길의 ‘위기관리 리더십’

박세당 “조선사람들 편히 잠자리 들고 자손 보전한 것 모두 최명길 선생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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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정책 대전환과 최명길의 ‘위기관리 리더십’

  • 기자명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입력 2023.04.0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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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저출산 대책은 백약이 무효로 역대 정권들이 모두 실패했다. 지난 16년 동안 280조원을 쏟아붓고도 돌아온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라는 불명예다.

출산 문제는 보육·교육·주거·일자리·복지 문제 등과 맞물려 있으며,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의 성패와도 직결돼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서서히 가라앉는 타이타닉호와 같고, 이대로 가다간 붕괴된다. 50년 후가 되면 인구가 3,700만 명으로 쪼그라들어 나라 지킬 군인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게 된다.

인구 문제는 국가백년대계이다. 윤석열 정부는 인구 문제를 국정의 최우선에 두는 ‘인구정책의 대전환’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저출산 대책이 실패한 원인을 따져보는 데서 새 출발 해야 한다. 현재 인구 정책 관련 범정부 부처를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로는 안 된다. 대통령 산하 조직이지만 심의권만 있고 예산권·집행권 등 실질적인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인구절벽 병(病)’ 치유를 총지휘할 수 있는 초강력 컨드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4월 1일부터 출범한 일본의 ‘아동가정청’처럼 저출산과 아동정책을 한데 묶는 독립 행정조직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이민 수용과 이민청 개설도 검토해야 한다. 미국이나 호주가 강국이 된 이유는 다인종에 대한 문호 개방 때문이었다.

인구절벽의 후과(後果)는 전쟁의 비극과 다름없다. 조선의 인조는 동북아 국제정세와 동떨어진 ‘향명배금(向明排金)’ 정책을 씀으로써 ‘정묘호란(1627)’을 초래했고, ‘병자호란(1636)’ 때에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굴욕을 당했다.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당대에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조처럼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각오로 국정에 임해야 한다.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은 ‘실리적 외교정책’으로 존망의 갈림길에 처한 조선을 구한 인물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최기남과 유영립의 딸 사이의 5형제 중 셋째 아들이다. 19세( 1605년, 선조38)에 생원시에 장원하고,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조선은 임진왜란-정묘호란을 당하고도 부국강병을 외면했다. 1636년 12월1일. 청태종은 12만 대군으로 조선에 침입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5일을 버텼지만, 최명길의 ‘주화론(主和論)’으로 종묘와 사직을 보존할 수밖에 없었다.

1637년 1월18일. ‘성하지맹(城下之盟)’이 이루어져 남한산성을 나온 인조는 백성에게 유시를 내렸다. “(중략) 나라는 반드시 자신이 먼저 해친 뒤에야 남이 해친다는 옛말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명길은 항복문서를 초안했고, 척화파(斥和派) 김상헌은 그 항복문서를 찢었다. 후세의 사가들은 이를 두고 “열지자(裂之者)도 가(可)요, 습지자(拾之者)도 가(可)다.”라고 했다. 항복문서를 찢은 김상헌도, 찢어진 항복문서를 기워 붙인 최명길도 모두 충신이라는 뜻이었다.

병자호란 후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 50여만 명을 헤아렸다. 최명길은 인조에게 “여성들을 귀국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세 차례에 걸쳐 공식적인 속환(贖還) 사절단을 파견하여 2,000여 명을 데려왔다. 훗날 박세당은 “조선 사람들이 편히 잠자리에 들고 자손을 보전한 것이 모두 최명길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최명길을 고뇌하게 했던 17세기 초반 격동의 파도가 400년 후 한반도를 엄습하고 있다. 패권국 미국과 맞수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상황이 ‘최명길의 재림(再臨)’을 요구하고 있다. 용기와 책임감, 그리고 희생정신으로 조선 후기 사회를 유지하는 지표 역할을 한 지천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排金後果兩胡侵(배금후과양호침) 배금정책의 후과로 정묘·병자호란의 침입을 당했고

和斥緣由報國心(화척연유보국심) 화친론과 척사론은 모두 보국심에서 연유했네

破竹煙中孤廓守(파죽연중고곽수) (청의) 파죽지세 연기 속에 외로이 성을 지켰고

叩頭城下血痕深(고두성하혈흔심) 남한산성 아래 항복으로 피 묻은 흔적 깊어졌네

還鄕女痛終天哭(환향여통종천곡) 환향녀의 슬픔 세상이 끝나도록 소리내어 울었고

被擄人悲死地尋(피로인비사지심) 끌려간 백성 비애 구하려고 죽을 곳을 찾았네

再造山河防自滅(재조산하방자멸) 나라를 다시 만들어 스스로 멸망함을 막았고

嗚呼繼絶不勝欽(오호계절불승흠) 아! 끊어진 것 다시 이으니 공경하지 않을 수 없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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