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한길문화강좌  " 정치는 중업이다 "
  •  동두천연천신문
  •  승인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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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시 하봉암동 간도문화체험마을에서
 
 
박형덕 동두천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정치는 중업이다 " 제2회 한길문화강좌가 30일 오전 11시 동두천시 하봉암동 간도문화체험마을에서 현경대 명예회장 전용원 회장, 간도문화체험촌( 촌장 우신구[전 고양시상공회의소 회장]) 후원으로 개회했다.

또한 5월 2주기 즈음해 포천시에서 가질 예정인 제3회 강좌는 기일인 5월 8일 유족분들도 참여한 가운데 포천시 군내면 명산리 울뫼숲에서 갖기로했다.

총리님 88회 생신 즈음해 갖은 " 제1회 한길문화강좌 " 후 총리님의 저서 " 정치는 중업이다 " 등을 기반으로 북경기지역의 자발적인 이한동 전 국무총리님 숭모사업 모임인 한길문화마을운동본부와 한길문화마을ㆍ역 추진위원회 등의 단체 회원분들은 이미 지난 2월 11일 포천시 가산도서관 등에 인문동아리도 등록해 활동을 시작해 3월 11일 토요일 오전 11시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 이형관 의인기자 묘역 등 남양주시 예술기행도 다녀왔습니다.

한길문화마을 운동본부와 한길문화마을ㆍ역 추진위원회 등에서는 보다 많은 분들께서 이한동 전 국무총리님의 뜻으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광복과 통일을 이루어 나가며 세계 평화와 인류사의 지속 가능한 번영을 위한 지혜와 역량을 모으는 한길문화마을운동의 확산을 위해 신설되는 역사에 한길문화역사관(씨앗박물관 포함)을 건립하도록 하여 기념관을 추진하고있다.

더욱이 기존 노선 뿐만 아니라 남양주시 별내에서 의정부 광릉숲 경유해 양주시 등으로 연장하는 운동도 함께 벌여 꼭 포천시가 아니더라도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지역에 한길문화역사관과 씨앗박물관 등을 건립하도록 한 뒤 기념관을 만들자는 의견입니다.

동두천 간도문화체험마을에서 갖은 30일 강의는 한길회 우종철 상임부회장님이 " 이한동의 '포용의 리더쉽' 과 문무대왕의 삼한일통"에 대해 가졌으며 간도문화역사관을 관람했다.

3월 30일 이한동 전 국무총리님를 기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함께 하는 한길문화마을운동본부 회원분들은 윤봉길 & 이형관 예술학교 등의 활동을 통해 인류사의 진정한 진일보를 가져 올 문학과 예술은 세익스피어문학과 예술이 아니라 우리 총리님의 직계 선조님이신 이우 선생님과 역동 우탁 선생님과 현담윤 장군님 등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한임강서원의 가르침을 실천한 홍주의 윤봉길 시인님의 문학과 예술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동두천 윤봉길 문화마을 프로젝트와 윤봉길학회 만들기 등에도 지혜와 역량을 모아 가고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마련된 제2회 한길문화강좌에 김성원 국회의원과 박형덕 동두천시 시장, 김승호 동두천시의회 의장, 이은경 시의원, 임현숙 시의원 함께 자리해 주시며 이한동 전 국무총리를 추모했다.

孟子 맹자는 告子上 고자상에서

孟子曰 맹자왈 仁 인은 人心也 인심야오 義 의는 人路也 인로야니라舍其路而不由 사기로이불유하며放其心而不知求 방기심이불지구하나니 哀哉 애재라人 인이 有鷄犬 유계견이 放則知求之 방즉지구지하되 有放心而不知求 유방심이불지구하나니學問之道 학문지도는 無他 무타라 求其放心而已矣 구기방심이이의니라“ 仁 은 사람의 마음이요, 義 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려두고 가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고도 찾을 줄을 모르니, 애처롭다.

사람들은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알면서, 마음을 잃고서는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의 道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라 하였듯이한길문화강좌 " 정치는 중업이다" 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광복과 통일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일뿐만 아니라 잃어 버린 우리의 마음과 가문의 정신을 찾아 인류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는 길일 것입니다.

한길문화강좌와 한길문화마을운동의 일환인 윤봉길 & 이형관 예술학교 활동에 담길 주요 내용은 1997년경 총리님의 저서 " 이한동의 나라살리기" ' 조상들의 국가전략을 다시 배우자 ' ' 국가이념과 국가목표부터 분명히 하자 ' ' 세계 문명의 정신과 가치를 주도하는 국가를 만들자 ' 등을 기반으로 하여1. 호남의 거유 하서 김인후 선생님과 어머니 옥천조씨 할머니 그리고 후손 인촌 김성수2. 창주 이성길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지금의 포천시 수원산에서 청의 홍타이지 군대를 격파해 최명길 선생님의 화의를 성사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수성최씨 가문의 최천극 선생님3. 역동 우탁 선생님과 행촌 이암 선생님의 가르침에 기반하고 창주 이성길 선생님과 청의 홍타이지 군대를 격파한 최천극 선생님의 전략으로 독립전쟁을 이끈 진정한 대구경북의 정신 김동삼 선생님과 김창숙 선생님4. 이와 같은 임강서원 가르침으로 민족계몽운동과 상하이 의거 등을 통해 대한겨레의 지평을 연 경주김씨 가문의 외손 윤봉길 시인님 등에 대해서 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3월 30일 동두천시 간도체험마을에서 제2회 한길문화강좌와 윤봉길 & 이형관 예술학교 특강의 행사로 이한동 전 국무총리님를 기리는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한길문화마을운동과 한길문화마을*역 추진운동은 "정치는 중업이다" 등 이한동 전 국무총리님의 가르침으로 문흥대왕 김용춘 할아버지께서 제천지윤 하관지후 창의애민 홍익인간 재세이화 이민위천 위자안지 교육입국 인보상조 경천순민 민귀군경의 정신으로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신 선례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은 당대 모든 과학기술의 산물이며 그를 통해 민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며 서로 돕도록 하고 교육입국 하여 삼한일통의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의로운 사람을 외롭게 하지 않는 덕필유린(德必有隣)의 정신과 함께 양주 농벗학당과 윤봉길 시인님의 상하이 의거로 손기정 선수께서 일장기를 묘목으로 가리는 기지로 이어지게 되고 민족혼을 살려 광복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의 사례처럼 마음과 눈이 닫혀 있으면 여건이 되어도 할 수 없지만 마음이 열려 있어 함께 해 이루어 왔던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북관대첩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왜적을 물러나게 하고 지금의 포천시 수원산 아래 명산리로 입향하시어 우리 이한동 전 국무총리님의 입향조가 되시는 창주 이성길 선생님께서는 요즘 표현으로 민 주도의 전후 복구 모델을 만드시고 훗날 있을 또 다른 전란에 대비해 놓아 후에 최천극 선생님께서 청의 홍타이지 군대를 격파하게 해 최명길 선생님께서 청의 군대까지 물러가게 하신 분입니다.

존주존명 사상이 판치던 시대에 파격적인 성호 이익 선생님에게 쓰게 한 임강서원 강당 중수기 중에 " 《시경》에 이르기를, “높은 산을 우러러 보며 큰길을 향해 나아가네.” 하였는데, 공자가 찬탄하여 말하기를, “시(詩)에서 인(仁)을 좋아함이 이와 같다. 도를 향해 가다가 중도(中道)에 쓰러지더라도 몸이 늙는 것을 잊고서 그에 힘써 날로 부지런히 하여 죽은 뒤에야 그만두는 것이다.” 하였다. 이것이 학문을 하고 마음을 보존하는 절도이니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이 당에 오르는 사람은 서까래를 우러러 보고 궤연을 굽어 보며 네 선생의 유열(遺烈)을 흠모하여 스스로 분발한다면 덕을 향상하고 학업을 닦는 방도와 몸가짐을 진중히 하는 의리에 있어서 절로 공부를 그만둘 수 없는 점이 있을 것이니, 이것이 서원을 설립하고 선비를 대우하는 본의(本意)이다."라 하였습니다.

동아일보 1924년 1월 13일자 대종교 김교헌 선생님 기사에서 "이 어른은 우리나라의 역사(歷史)에 관한 공부 발견이 제일 만타.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가 이만치라도 역사(歷史)에 대한 생각을 가진 것은 모다 이 어른의 공이라 할지니 그 공의 큰 것은 중국의 사마천(司馬遷)이가 세운 공보담 더 큰 것이다."

또 “선생은 무언(無言)한 애국자였다. 그가 말이 없으나 조선과 조선인을 어떻게 깊이 사랑하였던 것은 그의 일생 생활이 증명한다. 선생은 가위(可謂) 문한가(文翰家)의 예(裔)로 한학에 자못 조예가 깊었음은 지인이 모두 경앙(敬仰)하여 하는 바이어니와 그에게는 한학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오직 그의 사랑하는 조선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문학을 탐구하고 표창한 만이 그에게 의미가 있었다. 조선의 역사에 관한 것이면, 천리를 멀다 아니하고 수집하였고, 조선인의 저작이라 하면 편언척구(片言隻句)라도 등한히 아니하여 그 속에서 조선인의 생명과 정신을 찾으려하였다. 그가 빈한하여 의식을 구하기에 분망한 동안에도 조선광문회의 조선고서 간행에 수년간 편찬과 교정의 격무(激務)를 사향치 아니함도 실로 이 '무언(無言)의 민족애(民族愛)'에서 나온 것이다." 등을 보도 했다.

이 당시 이러한 보도는 인촌 김성수 선생님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또한 연주현씨 가문의 현천묵 선생님께서는 민족운동가이셨고 대종교인으로 김좌진 대장군님과 독립전쟁을 이끄신 분입니다. 인촌 김성수 선생님께서 광복 후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연주 현씨 가문의 현상윤 선생님을 모신 것은 현천묵 선생님 등 연주 현씨 가문의 시조이신 현담윤 할아버지의 유지를 민족의 이상으로 실현시키고자 한 뜻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인촌 김성수 선생님의 중시조이신 하서 김인후 선생님께서는 임강서원에 모셔진 김안국 선생님의 제자이셨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덕필유린(德必有隣) 덕 - 어떤 의미로 살펴야 할까요?

덕필유린(德必有隣)를 인용해 글을 쓰는 많은 분들 중에 "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에 자리 잡고 있는 인촌 김성수 선생의 고가(故家)에는 덕필유린(德必有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를 인용하며 " 덕필유린(德必有隣) "과 관련된 글을 쓰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 민족지 동아일보를 경영하고 지금의 고려대학교를 있게한 인촌 김성수 선생님의 덕필유린(德必有隣) 덕 德의 의미는 그분들이 쓴 내용이 맞는 것일까요?

우리 역사 기록에서 덕 德에 대한 의미를 깊이 고찰할 수 있는 것은 삼국사기 지증왕과 관련 된 기록입니다. 지증왕은 국호를 ‘신라 新羅’로 바꾸었는데 이는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에서 기인 한 것입니다.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의 덕 德에 대한 의미는 지증왕의 정책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지증왕은 순장제도를 금지하고, 소로 농사를 짓는 우경법으로 농업생산성을 높였습니다. 석빙고를 만들어 얼음을 저장해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서라벌 동쪽에 시장을 열어 상업을 장려했습니다. 나라의 군현을 정비해 처음으로 군주를 파견해 백성들을 직접 통치하며 "덕업일신 망라사방 (德業日新 網羅四方)"를 실천하였습니다. 이사부 장군을 파견해 당시 우산국으로 불리던 울릉도를 복속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국리민복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지증왕대 신라는 토착 신앙에 의해 나라와 사회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율령이 반포되고 불교가 공인된 것은 이후 법흥왕대입니다. 그리고 유학이 자리잡은 것은 그 이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덕 德의 의미에서 이 당시는 전통적인 가치와 지증대왕님의 사고가 결합하였을 것이며 불교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면 자비와 살생금지라는 개념이 가미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증대왕님은 당시나 지금의 일반과는 다른 고도의 지적능력을 갖추었음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후 기록으로는 고려 시대 의성김씨 시조(始祖) 김석(金錫)은 고려 초 무신(戊申) 정권시대에서 벗어나 널리 인재를 등용하는 문치(文治)시대로의 전환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국방과 백성들의 구휼에 공을 세워 경종 임금 때 식읍 300호를 하사 받고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으며 제8대 현종 때 덕유후(德儒侯)의 시호(諡號)를 받기도 하였다라는 기록입니다. 고려에서의 덕유 德儒는 의 義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례로 인촌 김성수 선생님의 선조 되시는 문흥대왕(文興大王) 김용춘 할아버지께서는 문흥(文興)은 창의(倡義)융성(隆盛)으로 후손들에게 교육하셨습니다. 그래서 광산김씨의 시조로 후손되는 김흥광 (金興光) 선생님과 후손분들께서는 민귀군경(民貴君輕) 경천순민(敬天順民)를 실천하며 고려 태조대왕님과 함께 하며 신라 新羅 덕유 德儒의 가치를 계승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인촌 김성수 선생님의 중시조 되는 분은 호남의 거유로 통하는 하서 김인후 선생님입니다. 또한 하서 김인후 선생님의 스승은 향약을 핑계로 덕업상권의 가르침 대중화를 위해 한글 대중화를 추진하셨고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에 사셨다는 문경공 김안국 선생님으로 경기도 연천군 고랑포에 있던 임강서원과 이천의 설봉서원 등에 배향되셨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면 인촌 김성수 선생님께서 사시던 시대에 인촌 김성수 선생님을 비롯한 미추대왕님과 문흥대왕 김용춘 할아버지 후손분들의 덕필유린(德必有隣)에서 덕 德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으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인문학을 다시 정립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뜻에서 우리 이한동 전 국무총리님의 숭모사업인 " 한길문화마을운동 " 등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총리님의 저서 " 정치는 중업이다 "와 " 이한동의 나라 살리기 "를 읽으시고 강의를 해 주실 분은 우종철 상임부회장님이나 김창호 총무에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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