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디자인아트빌리지 제1호 김도영 도예가

도자의 실용성은 귀한 손님에게 쓰임으로 생활의 품격이 달라진다.

흔히 도예가는 가업과 선생으로부터 도제(徒弟)적 수업을 통해 입문하는 것으로 도식화 되어 있다. 그러나 무농 김도영은 그 궤를 달리한다.

1959년생 59세인 그의 도자 학습방법은 나름의 독특함을 지닌다. 계명대학교와 대학원 산업미술과에서 이론과 실기를 익힌 후 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전통적인 물레 위의 흙을 빚으며 분청의 소박함과 편안함 그리고 토속적이며 해학적인 문양에 빠져 들었다.

전통적인 선으로부터 시작되어 현대적인 문양으로 완결된다.

스승으로부터 배운‘손에서 흙을 놓지 않는 끈기와 의지’를 가지고 겸허한 자세로 도자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하고 창조하는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것이 한결같이 작품에 임하는 무농의 자세다.

 

언제 도예에 입문 하셨습니까?

“초등학교때부터 중·고등학교 시절 전국대회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면서 모든 분들이 미술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으니 화가가 되길 권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은 산업미술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시절 자동차 모형을 디자인 하면서 여러가지 모형을 만들어 보는데 흙으로부터 느낀 감촉이 ‘바로 이거다’ 싶었고 내 인생의 방향을 도예 작가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발 빠른 도자의 형식에 몰두할 때 전통적인 물레 위의 흙을 빚으며, 분청의 소박함과 편안함, 토속적이며, 해학적인 문양에 매료되어 1980년 해인사 `계명요` 에서 흙을 접하고 남정 김영태 선생님께 사사를 받았습니다.

흙과 만났을 때 작가정신과 도예의 길을 농사에 비유하시면서 밤을 새며 말씀해 주신 것이 계기가 되어 ‘무농’ 이라는 이름 아래 도예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분청 같으신 선생님은 내 삶에 있어 가장 큰 전기(轉機)를 마련해 주셨음을 늘 마음깊이 새기고 깨닫게 하십니다.

1989년 분청사기 전통 도자에 갈급해 할 때 만난 백담 이광 선생님은 도자의 쓰임 즉 용(用)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도예가로서 인생의 전환점은 없었습니까?

“사람은 살면서 몇 번의 인생 전환점을 맞는다고 합니다.

1987년 군 생활을 마치고 분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스승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향 대구를 떠나 경기도 이천, 광주, 전라도 강진, 경북 문경 지역을 다니면서 전통도자의 세계에 깊숙이 빠져있을 무렵 어느날 ‘도자기를 알려면 옛 도요지를 찾아가라’는 원로도공의 가르침에 따라 전국의 도요지를 답사하며, 옛 파편을 주워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유약과 소성 등 도예인으로서 올라야 할 계단을 하나씩 섭렵하고 급월당 윤광조 선생님을 찾아가 ‘분청사기를 좀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학교에서 작가정신과 이론을 배웠다면 이번에는 쓰임을 배우라’ 했습니다.

그래서 1988년 광주로 올라와 백담 이광 선생님께 사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가르쳐 달라고 할 수 없어 선생님 요장으로부터 300m 떨어진 곳에 작업장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찾아와 250여 명의 회원을 지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낮에는 백담도예연구소의 도예교실 회원들을 지도하고 밤에는 선생님의 작업을 돕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흙을 손에서 하루도 놓지 않고 유약실험을 하며 장작 가마 곁에서 며칠 동안이나 불과 씨름하는 진지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말이 아닌 몸짓으로 흙을 다루는 진정한 장인정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다양하게 타렴(成形)하는 방법과 흙을 손에 붙이는 방법, 그리고 감정을 작품에 이입한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1989년에 롯데월드 민속관 내 ‘토림도요’라는 이름으로 공방을 운영한 것도 전환의 계기였습니다.

롯데월드 내 민속관에 입사형식으로 공방은 모두 인간문화재급이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발탁된 것은 젊은 나이에 발 물레로 시연해 줄 수 있고, 나이 많은 여러 공방 주인들과 회사와의 대화 채널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나 봅니다.

공방을 무료로 사용하고 작업장에서 만든 작품을 가져다 진열해 판매하니 점차 수익이 올랐지만, 회사가 공방운영 손익을 따져 분양 한다기에 그만두었습니다.

1990년 급월당에서 만난 윤광조 선생님, 그리고 백담 도요를 운영하시는 이 광 선생님, 1991년 초 통즉변이란 글을 적어주신 이규항 선생님, 흙과 유약의 재료공학적 측면을 다듬어 주신 이병하 선생님, 단국대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게 해주신 박종훈 선생님은 내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 주신 분들입니다.”


독특한 기법과 특유의 유약 제조 비법이 따로 있습니까?

“옛날 도공들은 흙과 유약의 조합 기술들을 비밀에 붙였습니다. 그러므로 현대 도예인들이 흙과 유약의 재료학적 측면을 서로 공유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요즘은 재야 작가들도 많이 개방되었습니다. 경험적인 측면에선 그들이 앞서지만 과학적 접근과
도출은 약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는 노력이 필요 할 때 우리 도자의 발전 속도는 빠르게 발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선·후배와 주위 지인들에게 흙의 조합 기술과 유약의 조합 기술을 모두 공개하고
공유합니다.

물론 분청을 하기 위해서는 청자-분청사기-백자의 발전형태로 볼때 청자와 백자의 유약실험도
많이 해야합니다.

1992년 경기도 광주군 실촌면으로 작업장을 옮기면서 이름을 ‘무농도요’로 바꾸고, 분청사기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 현대적인 감각에 맞는 문양과 형태를 변형시켜 접목한 작품을 보고, 전통적인 냄새가
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현대적 성향이 많다고들 합니다.

형태에서 큰 변화를 주기보다 현대에 맞는 문양으로 주로 자연의 이미지에서 따온 말, 야생화, 물고기, 나무 모양 등 단순하고 대담한 생략으로 부각시켰습니다.

또 새로운 문양을 개발해 회화성 있는 문양도 추구하고 자연스런 동양화적 필치에 의한 문양 접목은
붓의 농담과 터치의 기법을 적용하여 담백하고 소탈한 갈필의 이미지를 도자에 이입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습니다.
 

도예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예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겸허한 자세로 흙, 물, 불, 그리고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장인정신입니다. 또 도예가로서 자신만의 흙과 유약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나는 흙을 꼭 만들어 쓰고 있는데 현재 배우는 사람들에게도 자기 흙을 만들어 쓰는 것을 먼저
가르치고 있습니다.

도자는 흙이 결정합니다. 작가 취향에 따라 각자에 맞는 흙을 고르지만 나는 고른 흙보다는 거친
흙을 많이 쓰고, 전국을 돌면서 좋은 흙을 찾아 가져옵니다.

흙은 성질에 맞게 잘 섞어 쓰면 좋은 흙으로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일본의 예를 들자면 일본은 재료공학적 측면에서 고갈된 흙도 다시 만들어 쓸 정도로 많은 연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일천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좋은 흙이 일본으로 헐값에 넘어 간다는 것입니다. 일본 작가들은 50년 이상
쓸 수 있는 흙을 한국에서 수입해 갑니다.

우리 작가들의 경우 흙의 재료공학적 연구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가에게 흙과 유약 개발은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일입니다.”
 

 

 

일반인들이 도자기에 접근하는 올바른 방법을 말씀해주십시요.

“처음에 도예 전시장을 가면 자신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데. 어떤 작품이 좋은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체험이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주부들이 도자를 보는 안목을 키우고 쓰임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진짜 좋은 것을 옳게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일본 주부들은 접시 하나도 비싼 값에 사고 귀한 손님들에게 정성스럽게 쓸 줄 압니다. 그런데 우리 주부들은 귀한 것은 장식장에 진열해 놓고, 잘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그릇만 쓰고 있습니다.

작품이든 생활자기든 조심스럽게 만지는 것, 즉 두 손으로 드는 것은 예절의 시작이며, 아이들에겐 산 예절 교육입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뷔페식당에서 접시 들고 뛰어 다니곤 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접시를 생활자기로 쓰기 때문에 뛰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비싸게 사서 묵히는 습관부터 개선되어야 합니다.

취재 내용

  • 기사입력 : 2018.01.04 03:13 

연천동두천닷컴 배용석 리포터 y-dd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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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동두천닷컴 배용석 문화예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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