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란 말은 16세기 이후부터 지식인층을 일컫는 말로부터 시작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선비는 ‘도덕적 수양이 되어 있으며 출처(出處)가 분명하고 청렴강개한 도덕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이성무). 이들이 바로 조선사회를 이끌어 온 엘리트층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선비하면 무조건 고리타분한 유학자(儒學者)를 연상하기가 일쑤다. 많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파당을 이루어 당파싸움의 주역이 되었던 것이나, 소(小)중화사상에 젖어 있었던 것이나, 공리공론에 치우쳤던 것이나, 주자학이외의 학문은 모두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부친 것과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수양이 된 사람으로, 나아가고 물러감이 분명하면서 동시에 청렴 강개한 정치주체로 사회지도층을 지칭하는 의미라고 한다면 결코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할 것이다. 말하자면 청렴과 의리와 충군 애국정신과 굽힘이 없는 꼿꼿한 선비정신은 지금까지도 높이 평가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을 가진 선비들이 조선시대의 지도계층이 되고 정치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어쩌면 조선을 그 숱한 외침에도 꿋꿋하게 500년을 지탱시켜 왔는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싶다.
이제 불과 80년도 채 안된 대한민국 역사지만 대한민국이 겪은 그 80년도 따지고 보면 파란만장의 역사였다. 그 파란만장의 역사를 거치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G7에 가까이 접근할 정도로 까지 발전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어떤 정신적 가치가 밑바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 보여진다. 그리고 그 가치 구현의 중심에는 누가 뭐래도 유능하고 소신있는 공직자들이 있어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없지 않다.
그 숱한 정변 속에서 만약에 공직자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정치적 정세에 따라 부화뇌동하는 형국이었다면 나라 꼴은 형편없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나라 공직사회가 비록 부패하고 비리로 얼룩 져 있는 것 같아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의 직업의식을 가지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온 선비들이 있어 그 밑받침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근래에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간에 있었던 해괴망측한 이전투구 양상을 보면서 그래도 검사들이 보여준 강건함은 오랫동안 내재되었던 선비정신의 발로가 아니었던가 싶은 생각이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과감히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아끼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전통적인 선비정신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남명(조식)이 "죽은 것처럼 조용히 있다가 용처럼 나타나고 깊은 연못처럼 묵묵히 있다가 우레처럼 소리친다"고 쓴 현판의 문구처럼 그동안 윤석열 검찰총장이 보여준 말이나 행동은 가히 이 시대 선비의 표상으로 자리매김 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 정도였기에 하는 얘기다. "나는 누구의 부하도 아니다", "나는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오직 법에 복종할 따름이다"와 같은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오직 선비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왜 선비정신인가 하고 말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서양에 기사도(騎士道)정신이 있고 일본에 사무라이 정신이 있듯이 우리에게는 어쩌면 선비정신을 빼고 다른 어떤 정신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와 새삼스럽게 선비정신을 들먹이는 이유는 사회의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치 많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을 아주 태연하게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하는 얘기다. 선비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속된 말로 내로 남불이 일상이 되다시피 되었다.
선비의 기본 가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데에 있다. 모름지기 사회지도층에 있는 인사나 공직자라면 반드시 법에 꼭 어긋나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공정하지 않다면 삼가야 할 것이요 남의 손가락질을 받을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 눈총도 총이요 손가락질이 바로 지탄(指彈)인 것을 알아야 한다.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선비정신의 불씨를 살려 나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