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호 기자
김창호 기자
세계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면은 변혁기의 역사이다. 변화에는 언제나 위기가 뒤따른다. 그런 시대일수록 영웅호걸이 등장하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인류문명사적인 변혁기, 경제사적인 변혁기이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번영의 시대를 열 자산을 찾고 지혜를 찾아 극대화시켜 나가야 할 때이다. 이러한 때 왕방산,‘부소천’등과 관련한 포천문화는 더할 나위 없는 자산이다.

조선 태조대왕의 스승으로 천보산 회암사에서 열반한 무학대사의 정신적 스승인 도선대사의 답산가(踏山歌)에는 "송성(松城)이 떨어진 뒤에 어느 곳으로 향할 것인가? 삼동(三冬)에는 해 뜨는 평양(平壤)이 있도다. 후대의 현사(賢士)가 대정(大井)을 열매 한강(漢江)의 어룡(魚龍)이 사해(四海)에 통하도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 따라 고려 문종은 양주에 남경을 설치했고, 숙종은 개혁정책으로 남경천도를 시도했으며, 조선 태조와 정도전은 한양을 수도로 삼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도선대사의 답산가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달리 많은 것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 첫째가 도선대사와 관련이 깊은 일대는 지금의 포천지역이며 실례로 왕방산에 왕산사와 백운산에 흥룡사 등 많은 사찰을 창건했다.

또한 세종실록 지리지를 정리한 포천향토사료총람 144페이지와 145페이지에 양주도호부편에 (포천지역은) “본래 고구려의 남평양성(南平壤城)인데”, 또 136페이지 “포천현의 무둔산(無屯山), 주엽산(注葉山), 웅전산(熊前山)”에 나오는 웅전산은 어느 산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일제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나타낼만한 지명은 모두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특히 일제가 인공호수를 조성한 산정호수 자리에 있던 하천의 이름은 ‘부소천’이다. 북한에서는 1994년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 평양 근교에 단군릉을 조성하면서 네 아들의 석조상을 세웠는데 첫째가 부루, 둘째 아들이 부소, 셋째 아들이 부우, 넷째 아들이 부여로 되어 있다. 단군님의 둘째 아들 부소는 부싯돌을 만들어 불을 일으키는 법을 백성들에게 전했으며 이불로 숲을 태워 돌림병과 맹수와 독충을 태워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인간의 소망을 하늘로 실어다 주는 주술적 기운으로 인식되었다. 또 불은 모든 생명력의 근본이 되는 힘으로 만물을 순화하고 재생시키며, 따뜻함과 광명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불을 만들어 숲을 태워 맹수를 죽이고 돌림병을 잠재웠으며 그 부싯돌을 전해준 ‘부소’라는 이름의 하천이 있던 곳에 일제가 인공호수인 ‘산정호수’를 만든 것은 분명 우리가 풀어내야 할 역사의 ‘수수께끼’를 잉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국사책 첫페이지를 장식하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 유역에서 발견된 주먹 돌도끼는 아시아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으로 전기 구석기 문화권을 기존의 주먹도끼 분포지역인 ‘선진유럽 아프리카’ 지역과 자갈도끼 분포지역인 ‘후진 아시아’ 지역으로 구분한 미국 모비스 교수의 논리를 뒤집는 중요한 근거이다.

더 나아가 한탄강 유역이 인류문명의 발상지였으며, 아시아 문명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유추해 내기에 충분한 유물이다. 이는 포천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한탄강을 남으로는 한강을 사이에 둔 지역은 태초에 사람이 살기 좋은 기후환경과 지역적 환경을 가졌던 곳으로 인류문명이 발생한 곳이며 도시국가의 문명이 꽃피웠던 곳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철원과 평강 등지에 화산이 폭발하는 등 자연환경의 변화로 여러 차례 남과 북으로 인구의 이동이 시작하여 남으로는 일본열도로 동쪽으로는 알레스카를 건너 아메리카로 북으로는 몽골평원을 건너 지중해까지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는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족은 북쪽에서 남으로 이동하였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태초에 온난하고 비옥한 토지를 나두고 추운 동토에서부터 살았을 리 만무하다. 일각에서는 태초에 문명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큰 강을 끼고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큰 강은 항상 범람의 위험을 안고 있다.

태초에 인류문명이 발달하기에 적합한 곳은 왕방산 해룡골, 한내천, 영평천, 부소천, 왕숙천, 중랑천과 같은 규모의 하천유역이다. 왕방산 해룡골과 부소천의 부싯돌과 주먹돌도끼가 세월에 흘러가 전곡리의 한탄강가에서 발견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선대사의 뜻을 찾아 걸었던 무학대사의 왕방산 해룡골과 ‘부소천’을 찾아 가치와 정신을 복원하여 남북의 분단을 치유하는 통일과 홍익의 문화를 꽃 피어야 한다. 세계 인류가 함께 더불어 잘사는 세계 평화와 인류의 번영시대를 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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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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