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김민회(고 40회) 사무총장도 임명하였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광동인으로 살아가는 김창호 관련 내용입니다.

김창호는 조부님으로부터 임강서원 선현분들의 가르침을 받고 광동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월운 큰스님으로부터 월운 큰스님의 스승님이신 운허대사님의 스승님이신 월초대사님의 수제자이신 만해 한용운 선생님과 운암 김성숙 선생님의 반제항일삼일혁명 등에 대해 배운 뒤 군산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하여 독어독문학과 유럽의 대략적인 역사를 배운 뒤,

월초대사님과 만해 한용운 선생님과 운암 김성숙 선생님 그리고 운허대사님이 인류사적인 측면에서 종교지도자로서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루터나 프랑스의 종교개혁가 칼빈 등 보다 더 위대하고 훌륭하다는 것을 깨닳게 되어 독일 유학의 뜻을 접고 산티아고 순례길 뛰어 넘는 월초대사 삼일혁명 임강서원 순례길 만들기 운동을 기반으로 광릉숲유네스코운동 등을 제안하게 된 것입니다.

독일도 빌리브란트가 나치 척결과 동방정책을 펼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정치와 인사 행태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통일과정을 보면 우리의 삼한일통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유럽의 몽마르뜨 언덕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찾으려 적금을 들기 보다 오히려 임강서원 선현분들과 월초대사님과 삼일혁명 등의 가르침이 서려 있는 우리의 역사 현장을 찾아 생산적이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작품을 쓰고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차분하게 생각해 보아 주세요.

​하느님의 입장에서 바라 보면 우리가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유럽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청교도 혁명, 프랑스 혁명 등은 반역이고 쿠테타가 아닌지요?    저들 땅의 탐욕스런 절대군주로부터 지배받던 이들이 자유를 얻어 하느님의 사람들을 강탈하는 집단약탈로 바뀌어 아프리카 흑인들을 강제로 잡아다 노예로 삼고 매매하고 아편 등까지 팔아 세상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세태를 양산시키지 않았나요?

윤봉길 시인님과 같은 홍주 출신의 만해 선생님께서 출가한 지 10년이 되던 1917년 겨울 백담사 오세암에서 견성한 뒤에 읊은 오도송(悟道頌)을 생각하면 윤봉길 시인님의 상하이 의거는 최고의 공연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男兒到處是故鄕(남아도처시고향, 남아가 가는 곳이 바로 고향인 것을)/ 幾人長在客愁中(기인장재객수중, 나그네 수심에 오래 잠긴 이가 몇이던가) / 一聲喝破三千界(일성갈파삼천계, 한 소리 질러 삼천 세계 깨뜨리니)/ 雪裡桃花片片飛(설리도화편편비, 눈 속에 복사꽃이 흩어져 날리네). ‘ 진리는 눈보라 몰아치는 현실 속에서 피는 꽃과 같은 마음으로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외가가 목은 이색 선생님과 토정 이지함 선생님 그리고 이산해 선생님 등을 배출한  한산 이씨 가문인 홍주 출신의 김좌진 장군님은 일제의 최정예 연대인 가노연대를 궤멸시키는 청산리대첩 후 1921년경 홍범도 장군님과 여러 독립군단의 대표들과 장기 항전을 결의하고 대한독립군단으로 조직을 재편합니다.

이 대한독립군단 특수공작원 이흑룡 의군은 기자 등으로 활동하며 1926년경 부흥원을 설립하고 월진회 활동을 하는 윤봉길 시인님을 19세쯤 되셨을 때부터 교류합니다.

이흑룡 선생님을 통해 1923년 1월 단재 신채호가 썼던 '조선혁명선언'의 배경과 단재 신채호 선생님과 운암 김성숙 선생님 등의 의열단 활동과 1924년 북경에서 발행된 문예지 " 황야 "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1929년 겨울 윤봉길 시인님께서는 1927년 2000만 조선동포의 개인당 평균 빚이 150원이란 것 등에 이어 1929년 광주학생반제항일의거 소식을 접하고 보다 확고한 반제대일항쟁를 계획하던 중 다시 찾아 온 이흑룡 선생님과 함께 1930년 3월경에 " 丈夫出家生不還 "의 글을 남기시고 김좌진 장군님을 만나러 떠납니다.

하지만 윤봉길 시인님은 압록강을 건너기 직전에 1930년 1월 24일, 고려공산청년회 박상실의 흉탄에 맞아 순국하셨다는 말을 듣고 대한독립군단 특수공작원 이흑룡 의군과 함께 큰 슬픔에 빠집니다.

그동안 윤봉길 시인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윤봉길 시인님을 임강서원 선현분들의 가르침을 이은 인문학자이며 시인이며 예술가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특히 상하이 의거가 있기 전까지 이처럼 상당한 교류가 있었던 대한독립군단 특수공작원 이흑룡(군명) 의군에 대한 연구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때  월초대사님의 삼일혁명정신으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광복과 통일을 이루어 나가는데 지혜와 역량을 모으는 흑룡의 역할에 앞장서겠다는 광동인의 의기는 참으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앞으로 윤봉길 시인님의 마지막 시 誓詩서시(김창호가 붙힌 제목입니다)도 낭송하는 분들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妻妻(처처)한 芳草(방초)여/

明年(명년)에 春色(춘색)이 이르거던/

王孫(왕손)으로 더불어 같이 오게/

靑靑(청청)한 芳草여/

明年에 春色이 이르거던/

高麗江山(고려강산)에도 다녀가오/

多情(다정)한 芳草여/

今年(금년) 四月二十九日(4월29일)에/

放砲一聲(방포일성)으로 盟誓(맹서)하세

윤봉길 시인님의 誓詩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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