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서(遼西)경략, 일본을 개명시킨 백제 근초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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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서(遼西)경략, 일본을 개명시킨 백제 근초고왕

  • 기자명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입력 2022.12.22 13:52   

고대국가 삼국시대의 ‘3대 정복군주’는 4세기 백제 근초고왕, 5세기 고구려 광개토대왕, 6세기 신라 진흥대왕이다. 이 세 영걸의 공통점은 현인(賢人)들을 제대로 써서 천하가 복종하고 따르게 한 점이다.

4세기 동아시아는 혼란한 가운데 새로운 질서를 찾는 ‘격변의 시대’였다. 중국은 4세기 초부터 100여 년 동안 ‘5호(五胡:흉노,선비,갈,강,저) 16국 시대’로 불리며 분열과 통합을 거듭했다.

이러한 중국의 극심한 혼란은 동북아 정세변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구려는 세력 확장에 뛰어들어 313년, 314년에 낙랑군과 대방군을 멸망시키고, 서남방으로 진출했다. 백제는 3세기 중엽부터 대방군을 통해 중원지역과 교류했는데, 대방군이 사라지자 적극적으로 해양 활동에 나서야만 했다. 이는 곧 고구려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게 했다. 제 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 ?~375)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동북아 국제정세를 주도했다.

지금 중국은 근거 없는 역사 날조로 ‘동북공정’을 전개하여 우리 고대사를 중국사에 편입시켰다. 그동안 백제는 일제의 반도사관에 의해 한강 이남의 나라로 설정되어 있으나, 오히려 ‘요서경략’으로 중국 대륙에 진출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송서(宋書)>, <양서(梁書)>, <통전(通典)> <자치통감(資治通鑑)> 등 10곳이 넘는 중국 역사서에는 “진나라 때에 이르러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자 백제 역시 요서(遼西), 진평(晉平) 두 군을 점거해 백제군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서> 백제전에는 “백제의 국경이 바다 건너까지 미친다”고 되어 있다.

근초고왕의 이름은 여구(餘句)로, 제 11대 비류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삼국사기>에는 “체격과 용모가 뛰어났으며 식견이 넓었다”고 쓰여 있다. 346년에 즉위하여 375년까지 3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근초고왕은 활발한 정복활동을 펼쳤으며, 박사 고흥에게 <서기(書記)>를 편찬하게 했고,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 집권화에 박차를 가해 고대국가를 완성했다. 그 결과 백제는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전성기를 이룩했다.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이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雉壤, 황해도 배천군)으로 진격해왔는데, 근초고왕은 고구려군 5천여 명을 사로잡는 승리를 거두었다.

고구려가 371년 재침하자, 근초고왕은 이를 격퇴시키고 정예 병사 3만 명을 이끌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근초고왕의 재위기에 백제는 오늘날의 경기·충청·전라도 전부와 강원도·황해도 일부를 차지하는 강력한 고대국가로 성장했다.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 일왕은 68번째 생일을 맞이한 기자회견에서 “내 몸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일본은 백제 왕실이 주축이 된 나라다. 일본 문화의 뿌리가 백제이며, 일본 상고사는 백제사의 연장선상에서만이 설명될 수 있다.

근초고왕은 아직기(阿直岐)와 왕인(王仁) 등을 일본에 보내 <천자문>과 <논어>를 전해 줌으로써 유학 사상을 전수했다. 또한 371년 수도를 한산(漢山,경기도 광주의 옛 읍과 남한산성)으로 옮겨 거대한 수도권을 만들었고, 372년 진(晉)나라와 사신 왕래를 하는 등 외교활동 무대를 넓혔다.

근초고왕이 개척한 길을 따라 백제 사람들은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와 인도까지 활동무대를 넓혀갔다. 백제가 화려하고도 개방적인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근초고왕이 이룩한 ‘세계화’ 덕분이다.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끌어 백제를 백제답게 만들고, 백제 사람들이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한 영웅. 백제사에 큰 길을 연 근초고왕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龍姿鳳態治平康(용자봉태치평강) 고상한 풍채와 봉황의 자태로 평안하게 다스렸고

日就月將領域昌(일취월장영역창) 날로 달로 진보해 (백제의) 영역이 창성했네

文史傳輸開日衆(문사전수개일중) 학문과 역사를 전수해서 (일본) 백성을 개명시켰고

干戈經略怯漢王(간과경략겁한왕) 군사로 (요서를) 경략하여 한족 왕을 두렵게 했네

錦江一帶馬蹄下(금강일대마제하) 금강 일원 전부를 (백제의) 말굽 아래에 놓았고

洌水周圍疆土央(열수주위강토앙) 한강 주변의 땅을 강토의 중앙에 편입했네

三十長川臨曲盡(삼십장천임곡진) 삼십년 밤낮을 쉬지 않고 정성을 다해 다스렸고

名垂竹帛不可忘(명수죽백불가망) 공을 세워 이름이 역사에 빛나 잊어서는 안 되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일요서울i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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