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철 교수의 동서문화로
신용철 교수의 동서문화로 - 한국사의 통일(2022.8.15)
2차 대전 후, 유럽의 독일과 한반도는 유럽 아시아 대륙의 양 끝에서 정치와 이념으로 "쪼개진 세계 양 진영 안 분계선에서 분단된 같은 운명체"
독일은 지형이나 행정 구역에 따라 분단되었지만, 우리 한반도는 38선이란 직선의 위도에 의해 사정없이 갈라져...
우리 역사에는 두 차례 통일을 가졌다.
첫 번째 통일은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660년 백제와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반도에서 당 군을 축출한 7세기 후반의 통일.
두 번째 통일은 935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 왕건의 성취.

"신용철의 '동서 문화로'입니다."

신용철 교수 소개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졸업.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교수 엮임.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장 엮임.
경기도 문화재위원, 국사편찬위원 활동 엮임.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주요 저술:

비림비공운동 중 중국에서 이탁오 사상의 정치적 수용(석사 논문)
이탁오의 역사관시론.
초횡의 생애와 사상.
20세기 중국의 유교 논쟁.
서독사회민주당의 동방정책.
이탁오의 사회비평-그의 여성관을 중심으로(독문), 페터랑.
세계의 역사와 문화, 탐구당.
동양의 역사와 문화, 탐구당.
통일시대의 민주시민교육론, 탐구당.
홍콩은 어디로 가는가, 우석.
마카오 1999년, 우석.
하이델베르크의 추억, 우석.
운허 스님의 큰 발자취, 동국역경원.
『공자의 천하 중국을 뒤 흔든 자유인 이탁오 李卓吾』, 지식산업사.

번역 저술:

중국의 문화혁명(볼프강 프랑케, 탐구당)
중국현대정치사(W.로진스키, 탐구당)
중국인민해방군

 

위의 내용은 유투브 " 신용철 교수의 동서문화로 "에서 e고려신문 편집인이 옮겨 왔습니다.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하신 신용철 교수님께서는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신 원로학자입니다.

지금의 경희대학교는 신흥무관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흥무관학교가 신용철 교수님과 함께 그 뿌리 정신을 되찾아 가며 대한민국의 진정한 광복과 통일을 이루어 나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간절함에서 옮겨 왔습니다. 

임강서원 선현분들의 가르침을 실천한 안창호 선생님과 안중근 대장군님 그리고 윤봉길 시인님 등을 추모하는 남양주시나 포천시 광릉숲 등에 역 설치운동을 하는 것은

김용춘 할아버지께서 제천지윤 하관지후 창의애민 홍익인간 재세이화 이민위천 위자안지 교육입국 인보상조 경천순민 민귀군경의 정신으로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신 가르침으로 하는 것입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은 당대 모든 과학기술의 산물이며 그를 통해 민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며 서로 돕도록 하고 교육입국 하여 삼한일통의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김창호의 고조부이신 김세영 선생님께서 서로군정서와 대한통의부 등의 독립군 지원 조직 복원과 강화를 고민하시던 때 윤봉길 시인님을 만나

이미 우리는 에디슨 보다도 공자와 맹자 등 보다도 나폴레옹 등 보다도 위대한 인물을 가졌는데 그 것을 빛내지 못해 이런 처지가 되었을 뿐이라고 하셨다 합니다.

김홍기 할아버지께서는 윤봉길 시인님께서는 용춘 할아버지의 정원에서 춘추 할아버지와 문희 할머니 선조와 후예분들의 가르침을 되살려 실천한 최고의 언론인이고 예술가라 하셨습니다.

양주 농벗학당과 윤봉길 시인님의 상하이 의거로 손기정 선수께서 일장기를 묘목으로 가리는 기지로 이어지게 되고 민족혼을 살려 광복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인촌 김성수 선생님과 농벗학당 그리고 윤봉길 시인님 등과의 흔적이 남았다면 간도참변 그 이상의 일들을 겪지 않았을까요?

인촌 김성수 선생님의 " 덕필유린 " 정신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는 광동 김창호는 1997년경 인촌 선생님의 어느 후손분을 만났을 때 양주 봉양에 있었던 농벗학당의 역사를 조명해 기리면 혹 동아일보 가문에 닥칠 위기를 극복하고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의 예에서처럼 마음과 눈이 닫혀 있으면 여건이 되어도 할 수 없지만 마음이 열려 있어 함께 보면 해 낼 수 있다는 증거를 만들기 위함에 추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登白雲峯

(등백운봉) : 백운봉에 올라 - 李成桂 장군님 詩

引手攀蘿上碧峰
(인수반라상벽봉)
손을 끌고 담쟁이를 잡고 푸른 봉우리에 올르니,

一庵高臥白雲中
(일암고와백운중)
한 암자가 흰 구름 속에 높이 누워 있구나.

若將眼界爲吾土
(약장안계위오토)
만약 장래에 눈앞에 뵈는 땅이 내 땅이 된다면,

楚越江南豈不容
(초월강남기불용)
초나라든 월나라든 강남땅을 어찌 마다 하겠는가.

위의 시는 이성계 장군님께서 백운봉을 오른 뒤에
쓰셨다는 시입니다.

후세 사람들은 삼각산의 백운봉을 해석하는데...  김창호는 포천시 이동면 백운산의 백운봉을 오른 뒤에 쓰신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도선대사님께서 포천시 이동면 백운산자락에 흑룡사를 세우시고 대정을 열어 사해를 평정할 인재를 키우시며 아래와 같은 시를 남기셨습니다.

이성계 장군님은 도선대사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학대사님을 만났고, 위와 같은 시로 자신의 뜻을
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도선대사님의 답산가(踏山歌)에는

"송성(松城)이 떨어진 뒤에 어느 곳으로 향할 것인가?
삼동(三冬)에는 해 뜨는 평양(平壤)이 있도다.
후대의 현사(賢士)가 대정(大井)을 열매
한강(漢江)의 어룡(魚龍)이 사해(四海)에 통하도다."

라 하였습니다.

우리 깊이있게 감상해 보면 어떨까요?  성경에는 하늘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것은 하늘의 성령은 서양의 역사와만 함께 하셨을까요?

하느님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하는 의롭고 좋은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이 글을 읽고 신용철 교수님의 동서문화로 다시 살펴 보기를 시청해 주시는 분들께서는 언제나 의롭게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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