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양극화’와 만해 한용운

우종철 소장의 일요서울 일요논단 다시 읽기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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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양극화’와 만해 한용운

  • 기자명우종철 소장 
  •  입력 2022.09.02     수정 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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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을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 균형비행’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좌-우 ‘정치의 양극화’다. 문재인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양극화가 더 심화되었다. 정치의 양극화는 가짜뉴스 확산을 부추긴다. 이제 지혜로운 ‘통합 해법’이 필요한 때이다.

광복 직후의 남한은 지금보다 더 심각한 정치적 대혼란기였다.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등 좌익 진영과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 김성수·송진우의 한국민주당 등 우익 진영, 김구의 임시정부 세력이 극심한 갈등 속에 각축했다.

인촌(仁村) 김성수 선생은 이 혼란의 파고에서 ‘공선사후(公先私後) 정신’으로 신탁통치 반대와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좌익의 공산주의 정권 수립을 저지했다.

거슬러 올라가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은 당시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두 노선, 즉 민족주의 노선과 사회주의 노선의 충돌을 화해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는 “두 노선이 서로 반발한다면, 사상(思想)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장본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만해 선생이 지금 좌-우로 갈라진 ‘정치의 양극화’를 예단하고 한 말은 아닌지, 그의 선견(先見)에 놀랄 따름이다.

한용운은 조선 불교를 개혁한 위대한 승려이자 저항시인이요, 민족혼을 일깨운 독립투사이다. 본관은 청주, 자는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裕天), 법명은 용운(龍雲), 호는 만해이다.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한응준(韓應俊)과 온양 방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만해는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18세에 설악산 오세암(五歲庵, 백담사의 부속 암자)에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를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露領, 러시아의 영토), 시베리아, 일본 등지를 여행하였다. 귀국 후 27세에 강원도 백담사에서 연곡(蓮谷) 선사를 은사로 출가했고, 39세에 오세암에서 좌선하다가 견성(見性)했다.

만해는 32세에 불교 개혁방안을 제시한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탈고하여 불교계에 일대 혁신운동을 일으켰다. 36세에는 <불교대전(佛敎大典)>을 간행하여 반야사상에 입각,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40세에는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발간하였다. 이리하여 만해가 추구하던 불교의 대중화와 청년운동을 강화했고, 민족의식을 크게 고취하였다.

만해는 1919년(41세)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수정했고, 행동강령인 <공약 3장>을 첨가했다.

88편의 시를 모아 <님의 침묵(1926년)>이라는 시집을 발간하였고 176수의 한시를 남겼는데,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노래했다.

물산장려운동과 신간회(新幹會) 결성을 주도하였고, 신채호 선생의 묘비를 건립하였다. 창씨개명 반대운동과 조선인 학병 출정 반대운동을 목숨 걸고 전개하였다.

만해는 55세 때(1933)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이라는 택호(宅號)의 집을 지었는데, 총독부청사가 보기 싫어 동북방향으로 집을 틀어 버린 일화가 있다.

1944년 6월 29일. 만해는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66세에 입적(入寂)하고 말았다. 만해는 떠났지만 민족을 향한 그의 ‘사랑의 노래’는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윤동주, 이육사, 이상화 등과 함께 일제 강점기 최고의 저항시인이자, 불멸의 선각자인 만해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男兒何處不無鄕(남아하처불무향) 대장부가 가는 어느 곳이 고향이 아니던가

喝破高聲淨土疆(갈파고성정토강) 큰 소리로 깨끗한 세상에 진리를 밝혔네

濟衆導生刊大典(제중도생간대전) 중생을 구제, 이끌기 위해 <불교대전>을 간행했고

入廛垂手引天堂(입전수수인천당) 거리로 돌아가 중생을 도와 천당으로 인도했네

維新佛法韓民度(유신불법한민도) 불교를 개혁하여 한민족을 제도했고

獨立宣言世界彰(독립선언세계창)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세계에 드러냈네

荊棘滿身終殉國(형극만신종순국) 온몸 가득 가시 찌르는 고통으로 마침내 순국했고

嗚呼精氣四時長(오호정기사시장) 오호라, (선승의) 정기가 일 년 내내 푸르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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