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공공부문의 비중을 줄였는데,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우리나라는 도리어 늘렸다.

중앙정부 공무원 수는 13만 3천명 늘었고, 공공기관 정규직은 10만 8000명 늘었다. 공기업의 임금은 대기업보다도 8% 이상 높아졌고,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공기업은 2016년 5개에서 18개로 전체의 절반이 되었다.

지금 G2의 경기 침체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신흥국에서는 도미노 디폴트가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끝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는 위기 탈출을 위한 해법을 찾지 못하여 ‘각자도생 시대’가 도래했다.

문제는 저하된 우리나라의 위기극복 역량이다. 정치권은 여야 공히 정파의 이익에 매몰되어 있고, 노동시장은 경직화 되어 있어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얼마 전 대기업들에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한 일이 있는데, 공무원과 공공부문의 임금 동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공무원노조가 7.4%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가당찮은 일이다.

차제에 문 정권 때 늘려놓은 방만한 공공부문 군살 빼기에 나서야 한다. 고통 분담은 정부가 앞장서야 하며,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 경제’를 뿌리내려 생산성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국가적 고통분담이 필요한 시기이다. 공무원들은 정년과 보수, 퇴직 이후의 삶까지 안정돼 있는 특혜집단이다. 이러한 국가위기시에 공무원노조는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

고려의 신하가 조선 관료의 본보기가 된 사례가 있다.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가 바로 그다. 고려 말 삼은(三隱) 중 목은(牧隱) 이색은 유배 가고, 포은(圃隱) 정몽주는 피살 되고, 야은은 숨어 살며 모두 절의(節義)를 지켰다. 야은은 목은과 포은 등에게 배워, 3년 벼슬 한 뒤 고려 멸망을 예감하고 낙향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원년(1419년)에 나오는 야은의 졸기(卒記)는 다음과 같다. “상왕(上王, 태종)이 세자가 되자 불러들여 봉상박사(奉常博士)의 직을 제수하니, 재(再, 길재)가 아뢰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한다 하였는데, (중략) 다시 거룩한 조정에 출사하여 풍교에 누(累)를 끼칠 수 없습니다.’”

야은의 삶은 주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수양산으로 들어가 굶어 죽은 은나라의 이제(夷齊, 백이·숙제)와 닮았다. 길재도 무학대사가 “인물이 날 명산이다!”라고 한 금오산 아래서 은거하며 후학을 가르쳤다. 야은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1768년 영조의 지시에 의해 금오산 입구에 ‘고사리를 캔다’는 의미의 ‘채미정(採薇亭)’이 건립됐다.

숙종은 후인들에 절의를 장려하기 위해 친히 야은의 충절을 기리는 어제시 ‘좌사간길재(左司諫吉再)’를 지었다. 야은도 유명한 회고가(懷古歌)’를 남겼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데없네/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은 1353년 구미 해평(海平)에서 태어났다.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일선(一善, 구미)에 있다”고 적고 있다. 야은의 학문은 조선 초기에 등장한 사림 세력의 출발점이 되었다. 김숙자, 김종직, 사육신 하위지, 생육신 이맹전,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장현광 등이 야은의 학맥을 이어갔다.

끝내 고려의 신하로 남았지만, 조선조 사대부들로부터 ‘백세청풍(百世淸風)’, 절행(節行)의 표상으로 숭배를 받은 야은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孤忠貫日孰能兮(고충관일숙능혜) 해를 뚫는 충성을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秀句裁雲節槪俱(수구재운절개구) 구름을 마름질하는 뛰어난 시구는 절개를 갖추었네

寸草報恩山下屋(촌초보은산하옥) 한 치 풀 마음으로 보은하러 금오산 아래 귀향하니

諸生負笈洛東溪(제생부급낙동계) 여러 유생 배우러 낙동 산골짜기를 찾아오네

一身赫赫留名望(일신혁혁유명망) 야은은 혁혁하게 명망이 남아 있고

三隱綿綿避咎泥(삼은면면피구니) 삼은은 면면히 허물과 진흙을 피했네

不事二君千古訓(불사이군천고훈)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음은 천고의 가르침이고

斯文仰慕倍夷齊(사문앙모배이제) 유학자는 (야은을) 백이숙제 보다 갑절로 앙모하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