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상 채제공의 ‘규제혁파’와 민생경제 리더십

우종철 소장의 일요서울 일요논단 다시 읽기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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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상 채제공의 ‘규제혁파’와 민생경제 리더십

  • 기자명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입력 2022.07.07 09:35    수정 2022.07.07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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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가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의 3고(高)와 무역 적자, 주가 폭락 등이 민생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경제위기 태풍’을 극복하고 나아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의 목을 죄고 있는 규제개혁에 승부를 걸고 기업경영 환경을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모든 정부는 규제개혁에 힘을 쏟았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관료들의 ‘그림자 규제’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국가주의 큰 정부를 앞세운 좌파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들이 도리어 규제를 양산한 측면도 있다.

현재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규제개혁 순위가 33위로 꼴찌 수준이다. 규제개혁은 국정운영의 추진동력이 큰 정권 초반에 해야 한다. 경제위기 극복 대장정의 성패는 ‘규제와의 싸움’에 달려 있다 하겠다.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 18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요, 명재상이다. 정조 개혁의 총사령탑으로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이다. 당호는 ‘매선당(每善堂)’인데, 선고(先考)가 임종할 때 ‘매사에 선을 다하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채제공은 24세에 과거에 합격한 후, 39세에 도승지에 임명되었다. 이 해에 사도세자 폐위의 비망기(備忘記, 임금이 명령을 적어서 승지에게 전하던 문서)가 내려지자, 죽음을 무릅쓰고 이를 철회시켰다. 사관은 이 무렵 “다른 신하들은 윤허 받지 못한 일도 그가 나서면 허락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1788년(정조12), 정조는 69세의 채제공을 우의정에 제수했다. 이 때 체제공은 ▲황극(皇極, 편파가 없는 바른 치국의 도리)을 세울 것 ▲당론을 없앨 것 등 ‘6조 진언’을 상소했다.

1790년(정조14), 71세의 채제공은 다시 좌의정이 되었다. 이때 영의정과 우의정이 공석인 독상(獨相)으로서 3년 간 재직하며 개혁과제를 추진했다. 이것은 100년 동안 없던 일이었다.

이 기간 동안 채제공은 당쟁의 핵심 원인이었던 이조전랑의 통청권(通淸權, 정3품 이하 문신을 추천하는 권한)과 자대권(自代權, 후임을 자신이 지명하는 권한)을 혁파했다.

채제공의 가장 큰 업적은 조선 최고의 경제개혁이며, 조선 최초의 시장자유화 조치인 ‘신해통공’(辛亥通共, 1791)이다. 이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폐지하고 소상인의 상업·통상 자유를 허락한 조처이다. 이로 인해 조선 후기 경제발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

정조는 채제공에 대해 “영의정과 나는 공적으로는 비록 군신관계이나 사적으로는 부자관계와 같다”며 한없는 존경심을 표했다. 채제공이 정조 보다 33세 연상이니, 두 사람은 오륜(五倫)의 ‘군신유의(君臣有義)-부자유친(父子有親)’의 ‘의(義)와 친(親)’의 향(香)을 함께 느끼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채제공은 향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조와 채제공 사후 이 땅에는 불행하게도 현명한 왕과 어진 재상이 출현하지 않았다. 이후 조선은 삼정(三政)의 문란, 세도정치 등 국가행정과 공공성이 붕괴되면서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필자는 경제회생에 총력을 기울인 조선 최고의 경제정책가 번암 선생의 ‘민생경제 리더십’을 경모하는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有親有義五倫香(유친유의오륜향) 정조와 번암 간에는 오륜의 ‘친·의’ 향기가 있었고

遺訓先人每善堂(유훈선인매선당) 선친의 유훈으로 ‘매사에 선을 다하라’ 당부했네

禁亂前權規制擴(금난전권규제확) 금난전권은 소상인의 상행위를 규제하는 것이요

通共後策自由張(통공후책자유장) 신해통공은 상업의 자유를 확장하는 개혁조치네

獨擔國事謨皇極(독담국사모황극) 홀로 국정개혁에 나서 바른 치국의 도리를 꾀했고

逆境工商到順航(역경공상도순항) 불행한 처지의 상공업이 순항할 수 있도록 했네

明主良臣難一遇(명주양신난일우) 총명한 군주와 어진 재상은 만나기가 어려운데

嗚呼久久政彷徨(오호구구정방황) 아, 두 분 사후 (조선의) 정치는 오랫동안 방황했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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