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설총의 상소문과 언로 소통

우종철 소장의 일요서울 일요논단 다시 읽기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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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설총의 상소문과 언로 소통

  • 기자명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입력 2022.05.1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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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과 대통령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소통의 어려움에 있을 것이다. 과연 상명하복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 정치문화에 비춰볼 때 정치인과 장·차관 등 고위 관료가 서릿발 같은 정론직필(正論直筆)로 대통령에게 직을 걸고 직언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옛날 명군(名君)은 하루 사이에도 만 가지 일을 보살피되 깊이 생각하고 멀리 걱정하였으며, 그 좌우에는 올바른 선비를 두고서 직언을 받아들이고 부지런하여 편안히 쉴 틈이 없었다. 지금의 대통령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듣기 싫은 얘기를 듣고 국정에 반영하는 소통과 경청이 중요하다.

삼국시대-고려-조선을 거쳐 우리나라 선비들은 고뇌에 찬 시대의식, 발산개세(拔山蓋世)의 기개, 올곧은 정의감으로 벼슬을 내놓고, 심지어 목숨을 던지면서 군주에게 직간(直諫)했다. 그 목적은 시대정신을 실천하여 세상을 바꾸는데 힘을 보태는 것이었고, 수단은 대개 상소(上疏)였다.

상소문은 대부분 국정의 난맥상을 바로잡고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에 이로운 정책을 제안하기 위해 활용됐다. 군주를 설득하기 위해 탁월한 경륜, 뛰어난 지혜, 고도의 문장력이 동원되다 보니 상소문도 이사의 ‘간축객서(諫逐客書)’,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처럼 정치문학의 경지에 올랐다.

현재 전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소문은 신라 진평왕 때 병부령(兵部令) 김후직(金后稷, ?~?)이 올린 ‘상진평왕서(上眞平王書)’이다. 신라 제26대 진평왕은 54년의 긴 재위기간 동안 커가는 신라를 반석 위에 앉혀 놓은 장본인으로 고구려의 장수왕에 비견된다.

진평왕의 업적은 죽어서까지 왕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소임을 다한 김후직의 간언에서 비롯된 것이니, 후세는 그를 충신의 전범으로 삼고 그의 충간을 ‘묘간(墓諫)’이라 하며 칭송했다.

우리 역사상 본격적인 상소는 신라 제 31대 신문왕(681~692) 재위 기간의 설총(薛聰, 655년~?) 때부터라 할 수 있다. 신문왕은 고려 4대 광종, 조선 3대 태종과 같이 삼한 일통 후 왕권을 강화시킨 역할을 했다.

설총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태종무열왕의 딸) 사이의 아들로 한국 유학의 유종(儒宗)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당대에 함께 활동했던 강수(强首)와 후대의 최치원(崔致遠)과 함께 ‘신라 삼현’(三賢)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최초의 가전체 문학작품으로 평가되는 ‘화왕계(花王戒)’는 유학의 정신으로 왕도를 펼 것을 권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교 윤리서다. 유교적 도덕관의 중심 가치를 제공한 설총은 성균관 대성전에 문묘 18현을 배향할 때 제일 앞자리에 모셔졌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육당 최남선 선생이 우리 역사상 걸인(傑人)들로 꾸린 ‘가상 조정(假想 朝廷)’에 설총을 교육부장관에 추천한 바 있다.

설총은 신라에 한문이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유교의 경전을 우리말로 풀이했다. 특히 이것은 신라 이두(吏讀, 한자의 뜻과 새김을 빌어 우리말을 적던 표기 방식)의 시초가 된다.
설총은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소상(塑像, 찰흙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분황사에 모시는 효성을 보였다. 이렇듯 원효는 불교를 통해, 설총은 유교를 통해 구도(求道)의 길을 제시하여 유불의 쌍벽을 이루었던 인물이다.

필자는 국가 중흥을 위해 설총 같은 상소문을 쓸 수 있는 애국지사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뜻에서 설총을 추모하는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춘면요석몽청용(春眠瑤石夢靑龍) 요석공주가 (원효와) 봄날 잠에서 청룡 꿈을 꾸었고

출중능서자조용(出衆能書自造墉) (설총의) 뛰어난 명필은 스스로 성을 이루었네

이두교민제후진(吏讀敎民除後進) 이두를 집대성해서 백성으로 하여금 뒤짐을 없앴고

화왕계주치선봉(花王戒主馳先鋒) 꽃중왕이 임금에게 충고하여 앞자리를 질주했네

친현피악흥륭길(親賢避惡興隆吉) 현인을 가까이, 악인을 피하면 (나라가) 번성해 좋고

근사소인감퇴흉(近邪疎仁減退凶) 간신을 가까이, 인자를 멀리하면 쇠퇴해 나쁘네

수사육경존중대(洙泗六經尊重大) 유학의 가르침인 여섯 가지 경서를 크게 존중했고

한림국학앙유종(翰林國學仰儒宗) 한림(설총)은 국학에 모셔져 유학의 종주로 추앙받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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