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적의 강·약점을 알고 그에 대비했다. 10대 1이라는 수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정규전보다 유격전으로 승부하고, 적의 기도를 간파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을 유인하는 전법을 창안하여 적기에 활용했다.

둘째, 죽음을 무릅쓰고 적의 실상을 살폈다. 을지문덕 장군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百戰不殆지피지기백전불태)는 손자병법을 손수 실천했다.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적진에 들어가 거짓 항복의사를 내비치면서 적장(敵將)을 안심시킨 뒤, 적정(敵情)을 염탐하고 돌아왔다.

셋째, 결정적인 심리전(心理戰)으로 적의 기를 꺾고 화를 돋웠다. 을지문덕 장군이 수양제에게 보낸 ‘오언시(五言詩)’는 철저히 자신을 감춘 심리전이자 적의 기를 꺾는 공포의 예봉이었다. 이 글을 받고 적장들이 벌벌 떨었을 정도로 수군은 크게 동요되었다.

넷째, 군민(軍民) 합작의 수성(守城)·청야작전(淸野戰術)을 전개했다. 청야전술은 주변에 적이 사용할 만한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 물 등을 없애 적군을 지치게 만드는 전술이다. 고구려군은 대민심리전에 강한 군대였던 것이다.

다섯째,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렸다.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 지역에서 수많은 강줄기에 소가죽과 뗏목 그리고 돌 등으로 임시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두었다가 일시에 터뜨린 것은 지형지세의 이점을 십분 살린 전술이었다.

이처럼 을지문덕 장군은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를 잘 활용하여 국난을 극복한 천하 명장이었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을지문덕전>에서 “을지문덕은 우리나라 4천년 역사에 유일무이한 위인일 뿐 아니라, 또한 전 세계 각국에도 그 짝이 드물 도다!”라고 평한 일이 있다.

1400년 전 고구려가 100년 동안 분열 되었던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를 꺾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도자들의 ‘솔선수범’과 위험에 앞장서는 ‘위기 리더십’의 결과였다.

대한민국이 신 냉전과 각자도생의 높은 파고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살수경영’ 리더십의 총력전을 펼쳐나가야 한다. 안보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국방을 필두로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노동·복지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을지문덕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2017년 북 미사일 연쇄발사 다음 날 휴가 △러 군용기 독도 상공 침범 때도 NSC 불참 △ 서해 공무원 피살에도 책임 있는 대응 전무(全無) 등 안보 실정(失政)을 초래했다. 이런 당사자가 최근 청와대 용산 이전에 대해 ‘안보 공백’ 운운하는 것은 고소(苦笑)를 금치 못할 일이다.

국가운영의 두 축인 안보와 경제 수장은 학연·지연을 초월한 최고의 전문가가 요구된다. 필자는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으로 을지문덕 장군과 같이 지용(智勇)을 겸비한 우국지사(憂國之士)가 추천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자작 한시 ‘을지문덕찬(乙支文德讚)’을 소개한다.

통일중원역재편(統一中原域再編)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하니 천하는 재편되었고

고수충돌광요변(高隋衝突廣遼邊) 고구려와 수나라가 넓은 요하 주변에서 충돌했네

수성청야군민총(守城淸野軍民總) 수성·청야전술로 군과 민이 힘을 하나로 합쳤고

신책선공적진전(神策先攻敵陣顚) 신묘한 책략과 요서(遼西) 선공으로 적진을 전복했네

백만대군위조식(百萬大軍爲鳥食) 수나라 백만 대군은 나는 새들의 먹이가 되었고

을지경작세민권(乙支耕作世民權) 을지문덕이 경작(승리→수나라 멸망)한 결과 당 태종 (이세민)이 권세를 잡게 됐네

명공천고심회통(名公千古心懷痛) 휼륭한 재상을 천고의 세월 동안 그리워하는데

살수유유준걸언(薩水悠悠俊傑焉) 살수는 유유하게 흐르건만 호걸은 어디에 있는가

일요서울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