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문학평론가 김영미 시인 문학평론가 생의 고별의 순간까지 글을 쓰고 싶은 사람

시대의 지성인 별이 타계하다.- 이어령 (3)

지난 60년간 이어령 선생은 글을 써 왔다. 1956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한국일보에 문학평론 〈우상의 파괴〉로 인습의 벽에 갇혀 시대 의식을 담지 못하고 권위주의에 매몰된 기성 문단을 비판하는 파격적인 글로, 이어령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우상의 파괴〉는 “기성세대를 치고 나온 게 아니라, 잃어버린 작가를 먼저 복권하고 한국 문단에 소개하면서 그렇지 않은 작가들을 비판했던 것”이라며 “서정주 선생이 아주 훌륭한 시인이지만 그의 언어는 그 시대의 언어이지 우리의 언어는 될 수 없지 않느냐. 셰익스피어가 나오고 나면 그 후에는 희곡 작가가 나오면 안 되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래서 그는 “100명의 서정주는 필요 없고, 하나로 족하다, 요즘 말로 ‘짝퉁을 만들지 마라.’‘라고 외쳐대던 것이다. 그렇게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한 후, 60년 동안 글을 쓰고 가르치기를 멈추지 않은 이 시대의 멘토이자 학자이며 스승이었던 이어령 학자. 생전 그가 남겨둔 저서를 통해 앞으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방향을 제시하며,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고 변화시켜, 무엇이 소중한지 무엇을 지켜나가야 하는지 어떤 삶이 진정한 삶인지, 시대를 앞서 100년을 내다보며 수많은 언어(시, 소설, 수필, 칼럼, 등)로 수많은 다양성과 다양한 학문과 가르침을 담아 시대를 아우르며, 우리의 민족성과 문화 겨레를 아우르는, 우리의 정신을 일깨울 소중한 문화유산을 남기셨다. 이어령 선생은 지난 60여 년 집필을 해 왔으며, 특히 1982년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한일 수교 이후 한국인이 쓴 책으로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먼저 출간됐었으며, 일본 최초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1934년 일제 강점기 일본의 언어와 문화 역사를 배우던 시기로, 한자의 낡은 표현 대신 쉬운 토박이말로 감각적으로 구사한 시골길, 한복, 고려청자, 서낭당, 등 전통적인 일상 소재에 독창적인 의미를 부여해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를 새로이 풀어낸 일본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비평을 문화현상 중심으로 잘 피력해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입장에서 일본을 투시한 글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시대를 초월한 근본적인 통찰력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 “흙속에서 저 바람 속에” “언어로 세운 집” (등)으로, 이어령 선생의 [흙 속에서 저 바람 속에서]는 처음 이 땅에 한국 문화론의 가치를 들어 1963년 경향신문에 에세이 형식으로 연재되어 발표된 책으로 가난과 배고픔 식민과 전쟁 빈곤 그리고 한국의 일상과 풍습 한국인의 한국 문화론을 다시 세우는 초석이 되어 한국의 건축, 의상, 식습관, (등)을 토대로 하여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로 번역되어, 1년 만에 30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에 기적을 나았다. 이 책 한 권은 한국문화의 진면목인,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보고로, 그 속에 깃든 나라의 문화와 정신, 민족성을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국내에서 “젊은이의 기수”, “언어의 마술사”, “단군 이래의 재인”으로 불렸으며, 일본의 문화 인류학자인 다다 교수로부터 자신이 읽은 책 중 가장 감동적인 책이라는 칭함을 얻었다. [언어로 세운 집] 역시 한국시 32편을 1996년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지정된 ‘문학의 해’의 기념으로 《조선일보》에 ‘다시 읽는 한국시’로 엮어낸 시어 하나하나의 깊은 의미와 시의 상징성 시의 일상성과 평범한 언어를 넘어 시에 가무어진 아름다운 단어의 은유와 상징성 시의 사유를 면밀히 보여준 작품들로서 [청도도] [서시] [해]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김소월 시인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 유치환 시인의 [귀고], 등 요란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삶의 어느 어귀에서 고통받다 돌아와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 한술을 먹는 어머니의 정성이 깃든 시(언어)의 손맛이다. 하나하나 정갈하게 살피면 엎어둔 어머니의 그릇처럼, 오래고 오래되어도 새것보다 더 빛나는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그으며, 한국의 대표 명시 32편을 직접 선정하여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설한 연재물로 10개월간 수십만의 독자들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한국의 대표 명시 32편은 ‘다시 읽는 한국시’로 엮어내 오랜 시간 명시와 명문의 만남으로 회자되었고, 이 글의 존재는 알지만 제대로 접할 수 없었다. 저자의 완벽주의적인 고집에 가로막혀 이 글은 신문사의 오래된 기록과 사람들의 희미한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전설이 되어갔다. 이 글은 출판관계자들의 구애 대상이었고, 이어령 선생은 신문 지면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잘라내야만 했던 불완전한 글이라며 “제대로 내지 못할 바에야 출간하지 않겠다.”는 학자의 태도는 완강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오랜 설득 끝에 20년 후에야 비로소 이 글의 출판은 허락되었다. 이어령 선생의 특유한 세밀함과 관찰력이 깊이 통찰된 책들로 이 시대의 젊은 청춘들을 향한 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처럼 독백 적이며 시 같고 날카롭고 냉철하게 논설로 시로 소설로 다양한 장르를 아울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 시대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그 방향을 제시하며 가르치는 학자로 남았다.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한 세대를 잇는 것이다. 한 세대를 잇는 것은 창조이며 문화이며 생명이며 빛이다. 그 빛 속에 우리는 어둠을 이길 생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정표로 삼아 살아갈 수 있다. 88 서울 올림픽 굴렁쇠가 삶과 주검의 토대 위에 섰던 그때처럼 모태에서 태어나 자라고 주검에 이르기까지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가 생전 이어령 선생의 말처럼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라고 했듯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사실 즉 죽음은 기억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기억하라'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는 결국 죽음이며, 누구도 이러한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통적 기독교인들의 사상(思想)에서 본다면, 세속적인 물건과 일시적이고 무가치한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 많은 인간의 삶 속에서 바니타스 바니타툼 옴니아 바니타스 “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의미로 간주된다. 인간의 존재를 ‘시간의 조건’ 하에 생각했던 바로크 인들의 파괴적인 시간의 흐름 안에 이미 죽음의 전조는 들어 있었으며, ‘유년기가 죽으면 청년기가 오고, 청년기가 죽으면 노년기가 오고, 언제가 죽으면 오늘이 오고, 오늘이 죽으면 내일이 온다.’는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80-1588)의 말처럼, 삶은 처음부터 삶 안에 죽음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죽음은 매 순간 모든 인간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빛은 생명이며 소멸하지 않는 존재로, 한밤에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새로운 소성과 빛으로 생명을 순환하고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그 소성과 생명 위에 이 시대의 진정한 학자였으며, 이 시대의 진정한 지성이었던 이어령 선생은 지난 2022년 02월 26일 타계했다.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졌고 생활은 나날이 편리해지겠지만, 우리에겐 영원히 잠들지 않는 어둠 가운데 빛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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