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문학평론가 김영미시인문학평론가 생의 고별의 순간까지 글을 쓰고 싶은 사람

시대의 지성인 별이 타계하다. - 이어령 (2부)

그런 울림을 통해 민중을 변화시키고 발전 시켜 나갈 수 있는 지도자 그런 이를 우리는 학자라 부른다. 이제 이 시대의 지성이며 학자였던 이어령 선생이 왜 학자라 지칭되었는지? 이 시대의 선각자로서 학자로서 그의 업적은 어떠 했는지 함께 살펴보자. 먼저 이어령(1933년 12월 29일~2022년 2월 26일) 선생은 1933년 충남에서 태어나 초대 문화부 장관,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석좌교수,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 위원회 명예 위원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했으며,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으로 활약했으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으로 편집을 이끌었다. 또한 이어령 선생은 지난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에 민족의 큰바람과 파장을 일으켜 세웠다. 88올림픽 개. 폐회식에 간여하기도 전 한강에서부터, 경기장에서 사방에서 청룡이 등장했다. 당시 이어령 선생은 용은 중국의 상징이며, 용이 서울올림픽에 등장한다면, 중국 문화의 모방으로 간주할 것이라는 이유로, 이미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에 중국 문화인 청룡과 일본 문화의 아류로 비칠 부채춤도 뺐다. 이 둘을 배제함으로써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알고 있던 동아시아 문화에서 벗어나 한국 문화의 고유성을 널리 알릴 기회를 만들고자 지난 1988년 9월 17일 오후 1시 10분, 전 세계의 시선이 대한민국 서울에 쏠려 있던 바로 그 순간, 개막식이 2시간 정도 지난 시점 텅 빈 잠실 주경기장의 모습이 멀리서 보이며, 약 10초간의 정적이 흘러나왔다. 그때 어디선가 '삐이~'하는 고음의 이명 소리가 들려오면서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뛰어가는 소년이 빨간 챙이 달린 흰 모자에 흰 반소매 티셔츠, 흰 반바지를 입고 무심한 듯 대각선 끝에 손톱만 한 흰점 바로 굴렁쇠를 굴리며 운동장 한가운데에 다다라 멈춰 서 소년은 굴렁쇠를 어깨에 메고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굴렁쇠를 왜 굴렸을까? 냉전시대의 끝자락, 서울올림픽은 소련과 미국으로 상징되는 동서 진영이 모두 참가한 말 그대로 평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이었고, 소년이 등장해 굴렁쇠를 굴리며, 손을 흔들어 보이는 모습은 말 그대로 '평화' 그 자체임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적막과 단 한 명의 소년이 등장하는 퍼포먼스, 올림픽 사상 전례가 없는 획기적인 기획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굴렁쇠 소년은 윤태웅으로 그는 ‘바덴바덴 소년’으로 불리며,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차 차기 올림픽 개최지를 발표하는 날 태어났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세울! (seoul)”이라고 외친 그 벅찬 순간. 한낮은 존재의 절정인 순간이었다. 그림자가 사라지는 시간 짙푸른 잔디에 햇볕이 꽉 찼다. 사람들로 떠들썩했을 그때 보이지 않던 햇볕이 텅 비면 빛이 보인다. 바로 그 순간 사마란치가 ‘서울’이라고 외친 그 순간에 태어난 아이가 등장한 것이다. 그로부터 8년간 우리는 고층빌딩을 고층빌딩을 짓고,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이어령 선생이 보여주려 했던 건 운동장도, 시설도 아니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전쟁고아의 나라, 약소국가, 약소국가의 국민, 개발도상국으로 보였을 그 이미지를 깨고 싶었던 거다. 그 8년 동안 한국의 아이는 이렇게 잘 자랐으며, 한국! 한국하면 전쟁고아와 분단국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외국인이 대다수였었고, 퓰리처상 수상작의 단골 소재는 한국의 전쟁고아였다. 한국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나라로 이어령 선생은 이런 외국인의 편견을 197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직접 겪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즈음, ‘이들에게는 노엘(Noel)이 없다’는 포스터가 벽에 붙어 있었다. 포스터가 붙던 그때, 그 포스터 사진엔 땟국 물 흐르는 옷차림을 한 한국 아이들이 있었다. 이어령 선생은 “굉장한 충격이었지. 올림픽 개막식을 기획하면서 한국하면 떠오르는 전쟁고아의 이미지를 깨부수고 싶었어요. 그 편견을 일순간에 날려버리려면 강렬한 장면이 필요했지.” 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생명을 통해 생명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생명은 빛이었다. 순진무구한 생명의 존귀함, 폐허를 딛고 피어난 기적. “올림픽은 육체의 꽃밭이에요. 영혼이 아닌 육체의 향연이지. 그런 올림픽의 정신을 가지고 생명을 보여주려 했어요.” 굴렁쇠는 원이다. 원은 둥근 것이며, 돌고 도는 것이다. 소멸에서 생성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하늘과 땅이며, [중용]의 제일 첫 문장에 천명 지 위성(天命之谓性)은 천은(天)하늘로 性(성)은 사람마다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 있는 것이며 곧 本性(본성)을 말하며, 하늘의 음양오행과 만물의 화생(化生)을 의미한다. 또한 유학에서는 하늘과 사람은 합일 체라는 학설이 있으며 우리의 태극기의 태극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를 담고자 했기에 ‘동양에서 개최하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기호는 단 하나. 원만큼 강력한 심벌이 또 있었을까! 반면 서양은 직선적 사고가 강하면, 동양은 원형의 사고가 강하다. 서양은 처음 중간 끝을 선형으로 인식하는 종말론이 지배한다면, 동양은 영원회귀의 철학이 강하게 담겨있다. “굴렁쇠는 원이잖아. 그건 지구이기도 하고, 올림픽 마크의 둥근 원이기도 하고, 한국과 서양 사상이기도 해요. 어린이가 굴렁쇠를 굴리는 건 미래의 지구, 미래의 한국을 돌리는 것을 의미하지.” 굴렁쇠 장면에서 많은 이들이 갑론을박한 부분도 있었다. 바로 배경음으로 삽입된 단음의 “삐이~” 소리를 두고서 누구는 음향 실수라고 하고, 누구는 효과음이라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어령 선생은 이 소리를 ‘정적의 소리’라며 이렇게 표현했다. “정오의 정적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텅 빈 정적.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건 침묵이지 정적은 아니거든. 정적은 벙어리가 아니야. 음악을 넣지 말고 아주 높은 헤르츠(hertz)로 단음을 내기로 했지. 소리로 정적을 나타낸 거여. 그 정적 속의 한 아이, 인간 존재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어령 선생은 또 이렇게도 말했다. “창조 뒤에는 늘 외로움과 정적, 그리고 암흑이 온다. 한밤의 태양이 아니라 대낮의 어둠이 있다. 딱 한 번밖에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벤트는 아름답고 절실해야 했다. 사람들은 일회성 행사에 왜 그 많은 돈을 낭비하느냐고 물었지만, 이 물질주의자들에게 반문하고 싶다며, ”당신이 태어날 때, 죽을 때에도 한순간이다. 되풀이되지 않는 시간이요 다시 점유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것을 위해 당신은 전 생애를 바치고 있지 않은가.” 라고 말이다. 역시 이 시대의 학자다운 면모라 아니할 수 없다.

* ‘시대의 지성인 별이 타계하다’는 1부 2부 3부로 나뉘어 연재된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