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후진국은 크게 세 가지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 ‘국가정체성’, 그리고 자국(自國)의 위대한 인물 추앙 유무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초기 방역에 성공했다고 ‘K방역’을 자랑했던 정부는 ‘백신 확보’에 실패하여 ‘선진국 자평’이 무색해졌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 해도 전체적으로는 ‘선진도상국(先進途上國)’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첫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살펴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며,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로마시대 귀족들은 전쟁이 발발하면 가문의 대를 이을 자식 한 명은 남기고 전쟁터에 나갔다. 영국의 이튼스쿨 학생들이 1차·2차 세계대전 시에 2000명 이상 전사했다. 이 두 사례는 신라의 화랑에 비하면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신라 화랑 중에는 반굴(盤屈)-영윤(令胤)처럼 부자(父子)가 나라를 위해 순절한 경우가 많았다. 취도(驟徒)-부과(夫果)-핍실(逼實)처럼 삼형제가 모두 나라를 위해 충절을 바친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태종무열왕은 두 사위인 김품석(金品釋)과 김흠운(金歆運)의 피를 삼한일통을 위해 사직(社稷)의 제단(祭壇)에 바쳤다.

이처럼 신라의 화랑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줄 알았다. 그것이 약소국 신라가 삼한일통의 여세를 몰아 ‘나당7년전쟁’을 통해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힘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31명의 장관을 야당 동의 없이 임명동의한 것에서 노정된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 지도층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비극이다.

둘째, ‘국가정체성’을 살펴보자. 국가정체성은 대한민국의 ‘혼’이다. 혼이 사라지면 대한민국은 존속할 수 없다. 대한민국 70년은 전쟁상태의 연속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들 중 ‘역사 바로 세우기’,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 같은 주장을 하는 바람에 국가의식이 약해졌다.

그 결과 체제수호에 앞장서야 할 정치인·법조인·공무원·교사·군인들까지도 국가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혼란스럽다. 지난 13일 법원에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판매·배포금지 가처분 소송이 기각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셋째, 한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자기 나라의 위대한 인물을 제대로 기릴 줄 알아야 한다. 어느 나라든 나라를 세운 분을 국부(國父)라고 평가한다. 이승만은 ‘건국의 원훈(元勳)’으로 건국(建國) 대통령이다. 박정희는 이승만이 세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근대화의 아버지’로 부국(富國) 대통령이다.

중국의 천하통일을 위해 이사(李斯)는 진나라 시황제에게 축객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간축객서(諫逐客書)’의 상서(上書)를 올렸다.

“태산은 어떠한 흙도 사양하지 않아 우뚝 솟은 높이를 이루게 됐고, 황하와 바다는 작은 냇물을 가리지 않아 깊은 수심을 이루게 됐다.”

“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 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 故能就其深(고능취기심)”

이사는 태산과 하해가 높이와 깊이를 자랑하게 된 이유로 ‘포용성’을 제시하고 있다. 역사도 태산과 하해와 같다. 한 나라의 역사는 작은 물줄기가 모여 도도하게 흐르는 큰 강물과 같다. 굽이굽이 명(明)과 암(暗)이 있고, 공(功)과 과(過)가 혼재하기 마련이다.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에게도 여러 과오가 있었지만, 두 분이 있었기 때문에 건국(建國)과 산업화(産業化)가 이루어졌다.

정치 지도자들은 전임 대통령들의 업적을 밝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긍정의 역사관이 큰 물줄기를 이룰수록 국민의 자부심은 커질 것이고 국민통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