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개혁·개방으로 부국강병 주장하다

  •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입력 2015-10-05 10:27
  • 승인 2015.10.05 10:27
  • 호수 1118
  • 55면


 

18세기 실학사상 집대성… 500여권 저술 남겨

[일요서울 | 우종철 논설주간]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최고봉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1782년(정조 6), 스물 한 살 때 초시와 회시에 합격하여 생원으로서 벼슬길에 오른 지 3년 뒤에 정조의 부름을 받아 경연석에서 ≪중용≫을 강의하면서 파란 많은 삶이 시작된다.
이후의 그의 삶은 대체로 3기로 나눠질 수 있다. 제1기는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벼슬살이를 하던 득의의 시절이고, 제2기는 정권에서 밀려나 귀양살이를 하던 시절이며, 제3기는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던 시절이다.

1797년(정조 21), 정약용은 동부승지로 있을 때 공서파의 탄핵을 받게 되자, 해명서인 ‘자명소’를 제출한다. 그는 자명소에서 “자신은 천주교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서양의 학문, 특히 천문, 농정, 지리, 건축, 수리, 측량, 치료법 등의 과학적 지식을 얻기 위해 서학에 접근했다. 이를 위해 서학에 능통한 천주교 신부와 신자를 만났다”고 밝혔다.

또한 정약용은 정조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사직을 요청하면서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하여 후회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중국의 고염무 같은 학자들은 벌써 천주학이 거짓됨을 환하게 알고 그 핵심을 깨뜨렸습니다. 그러나 신은 멍청하게도 미혹되었으니, 이는 젊은 시절에 고루하고 식견이 적어서 그렇게 되었던 것으로, 몸을 어루만지며 부끄러워하고 후회한들 어찌 돌이킬 수 있겠습니까. (중략) 위로는 군부(君父)에게 의심을 받고 아래로는 당세(當世)에 나무람을 당하여 입신한 것이 한번 무너짐에 모든 일이 기왓장처럼 깨졌으니, 살아서 무엇을 하겠으며 죽어서는 장차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신의 직을 체임(遞任)하시고 이어 내쫓으소서.”라고 하였다.

정조는 이 상소문을 읽고 답변하기를, “선(善)의 싹이 봄바람에 만물이 싹트듯 하고 종이에 가득 열거한 말은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사직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3년 후 정조가 죽은 후 정약용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가 일어나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처형되거나 유배를 당했다. 정약용 역시 유배된 뒤, 황사영백서사건으로 강진에 유배되어 무려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였다. 이 기간 동안 경학(經學)에 전념하여 학문적 체계를 완성하고 수많은 저술 활동을 통하여 조선 후기 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귀양살이는 정약용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실학의 최고봉이 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귀양살이라는 정치적 탄압을 학문에 임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승화시켜 학문적 업적을 이뤄낸 정약용의 초인적인 의지는 만세에 빛날 것이다.

1818년(순조18), 유배가 풀리자 정약용은 고향인 마현으로 돌아왔다. 그의 나이 57세 때였다. 여기서 정약용은 1836년 75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제3기 인생을 맞이한다. 유배생활 중에 쌓은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여유당전서≫ 등 500여 권의 저술을 통해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다.

정약용은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서 자신의 저술에 대해 “육경(六經)과 사서(四書)는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고, 일표(一表)와 이서(二書)는 천하와 국가를 위함이니, 본말(本末)이 갖추어졌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육경과 사서에 관한 저술이 근본이라면,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는 경세(經世)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었다.

실학자로서 정약용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한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국가개혁사상이 집대성되어 있는 ≪경세유표≫에서 그는 경세치용(經世致用)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이 종합된 개혁사상을 전개하였다. 그는 ≪경세유표≫를 후대에도 계속해서 갈고 닦아야 할 ‘초본’이라 했다. 우리는 그의 개혁안이 묵살되거나 좌절해가는 과정에서 조선왕조의 몰락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ilyo@ilyoseoul.co.kr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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