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의 전범, 김후직 간언 상진평왕서

충신의 전범, 김후직 간언 상진평왕서
  •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입력 2015-08-10 11:11
  • 승인 2015.08.10 11:11
  • 호수 1110
  • 28면

 

국정난맥 바로잡아 국리민복에 도움 준 상소문

[일요서울 | 우종철 논설주간] 삼국시대로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비들이 고뇌에 찬 시대 의식, 서릿발 같은 기개, 올곧은 정의감으로 벼슬을 내놓고, 심지어 목숨을 던지면서 군주에게 직간(直諫)을 했다. 그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었고, 수단은 대개 상소(上疏)였다.

상소문은 대부분 국정의 난맥상을 바로잡고 국리민복(國利民福)에 이로운 정책을 제안하기 위해 활용됐다. 군주를 설득하기 위해 탁월한 경륜, 뛰어난 지혜, 고도의 문장력이 동원되다 보니 상소문도 제갈량의 ‘출사표’ 처럼 정치 문학의 경지에 올랐다. 소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늘의 우리 정치 현실에도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신라 제26대 진평왕은 고구려의 장수왕에 비견될 만큼, 54년의 긴 재위 기간 동안 커가는 신라를 튼튼히 앉혀놓은 장본인이다. 진평왕 때 인물인 김후직(金后稷, ?~?)이 생전에 진평왕에게 올렸던 상소는 현재 전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소문이다.

김후직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기록이 정확하지 않지만, 지증왕의 증손으로 이찬을 지냈으며, 진평왕 2년(580)에 병부령(兵部令)이 되었다는 <삼국사기 제45권 열전 제5> 기록이 남아 있다.

“사냥을 중지하시고 정사를 돌보십시오. 옛날 임금은 하루 사이에도 만 가지의 일을 보살피되 깊이 생각하고 멀리 걱정하였으며, 그 좌우에는 올바른 선비를 두고서 정직한 말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부지런하여 감히 편안히 쉴 수가 없었습니다. (중략) 지금 전하께서는 날마다 놀이에 미친 사람 아니면 사냥꾼과 더불어 매나 개를 풀어놓고 꿩이나 토끼를 쫓으며 산과 들을 달리면서 스스로 그칠 줄을 모르시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신라 충신 김후직이 올린 상소문이다(上眞平王書). 사냥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 진평왕의 무절제함을 바로잡으려 목숨을 걸고 바친 글이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이 글자 그대로 서릿발 같다. 오늘날 장·차관이나 고위직 관료가 국가지도자를 이렇듯 통렬하게 비판한다는 건 직을 걸지 않은 한 어려운 일이다.

 

김후직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과 공자의 <서경(書經)>을 인용하며, “노자는 ‘말을 달리고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狂) 한다’고 하였고, <서경>에는 ‘안으로 여색을 탐하거나, 밖으로 사냥에 미치거나 이 중 한 가지만 하더라도 망하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중략) 전하께서는 이를 유념하시옵소서”라고 간하였다. 그러나 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김후직이 재차 간하여도 듣지 않았다.

김후직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세 아들에게 “내가 신하로서 왕의 잘못을 바로 잡지 못했다. 왕께서 놀이에 계속 빠져 계시면 패망에 이를까 근심이다. 내가 죽으면 왕이 사냥을 다니는 길가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그 뒤 어느 날 진평왕이 사냥을 가는데 어디선가 “가지 마십시오”라는 소리가 들렸고, 왕은 묘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되었다.

이에 진평왕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그대의 충성스러운 간함은 죽은 후에도 잊지 않는구나. 만약 이를 듣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살아서나 죽어서나 어찌 낯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리고 이후 진평왕은 크게 뉘우쳐 사냥을 가지 않고 정사에 힘썼다고 전해진다. 태생이 기이하고 장대한 풍모를 지녔던 진평왕은 대대적인 관제를 정비하고, 원광법사를 중용해 화랑도를 육성하는 등 삼한일통과 천년사직의 기초를 닦은 영걸이다.

진평왕의 업적은 모두 죽어서까지 왕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소임을 다한 김후직의 간언에서 비롯된 것이니, 후세는 그를 충신의 전범으로 삼고 그의 충간을 ‘묘간(墓諫)’이라 하며 칭송했다. 선비들의 존경을 받은 김후직의 묘는 경주에서 포항으로 가는 국도 옆에 지금도 남아 있다.
ilyo@ilyoseoul.co.kr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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