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하나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전인적 교육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인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을이 무수히 늘어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마을이 소멸되고 있고, 국가경쟁력이 무너지고 있다. 정치경제 등 사회전반이 혼란스럽고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도 우왕좌왕해서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특별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뾰족한 대안이 없다. 더 나아가 지방자치의 존재 가치를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정도다. 자치의 주체인 마을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라 향후 30년 안에 전국에서 84개 시·군과 1천383개의 읍면동이 소멸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가평군은 어떤가? 가평군 경우 126개 행정리 가운데 83개리가 소멸 위기의 마을로 조사되고 있다. 20~39세 여성이 마을 인구의 10% 미만이고,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마을이 바로 소멸 위기의 마을들이다.

전체 주민이 255명인 한 마을은 65세 이상 고령자가 79명이고 20~39세 여성이 단 한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마을은 가평군에서 소멸위기가 가장 높은 마을 중 하나다. 이런 이유로 가평군은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사망 대비 출생 비율이 가장 낮은 지자체다. 인구 자연증가율이 경기도에서 지난 7년째 계속 꼴찌다. 외부의 인구 유입이 없다면 가평군은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게 될 지자체라는 얘기다. 39년간 공직생활하면서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고민과 실천을 해온 나로서는 정말 충격적인 통계다.

우리 군은 요즘 공동체 마을만들기를 열심히 추진하고 있다. 나는 마을 주민들에게 “마을로 귀환”, “산촌(山村)자본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군은 물론 전국적으로 마을 소멸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공동체 마을‘만들기’가 아니라 공동체 마을‘구하기’로 정책테마를 바꿔서 시행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마을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생각해봤다. 일본에서 이미 주목을 끌었던 ‘산촌자본주의’의 가평군 모델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본주의 흐름대로만 간다면 저출산 고령화와 이로 인한 마을 소멸의 위기를 피할 수 없다. 마을을 살리는 새로운 자본의 개념을 도입해 정책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을 자본주의’는 예전부터 우리 마을공동체가 갖고 있던 자본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해서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역발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 패러다임은 앞으로 여러 실천과 이론적 정비를 통해 좀 더 체계화될 것이다. 일단 그 원초적 개념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해 본다.

우선 사람을 중심으로 한 자본을 강화해야 한다. 즉 이전 마을공동체가 갖고 있던 사람간의 ‘관계’와 ‘신뢰’의 자본, 흔히 ‘사회적 자본’이라고 하는 마을자본을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마을공동체를 살리겠다며 정부가 성급하게 보조금을 지급한 것은 마을에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켜 오히려 마을의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켰다. 이웃에게 정나미가 떨어져 떠나고 싶은 마을이 됐다면 그 마을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마을이다. 마을‘구하기’는 그래서 먼저 마을주민들 간의 관계를 복원하고 신뢰를 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품앗이나 물물교환 그리고 마을화폐 같은 마을순환형 경제생태계를 만들다 보면 마을 주민들은 비록 가난하더라도 누구나 다 마을공동체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원으로서 살게 될 것이다. 그만큼 마을 안에서의 삶은 안전하고 행복해 질 것이다.

두 번째는 마을이 갖고 있던 다양한 자연자원을 재조명하고 활용해서 마을 자본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마을 자산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과 식량과 연료가 이미 가평군의 자연 속에 차고 넘쳤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그것들을 돈으로 사서 쓰고 있다. 그것도 우리의 것을 싸게 주고 외부의 것을 비싸게 사고 있다. 더구나 후손들이 활용할 자연자원을 황폐화시키면서 외부로 마을자산을 처분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도 필요하다. 구한말 나라의 땅과 자원을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팔았던 부끄러운 역사가 비록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금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국에서 2011년 제정된 로컬리즘 액트(localism act, 지역주권법)는 ‘1. 매각자산에 대한 커뮤니티 우선입찰권, 2. 공공서비스 공급 및 운영에 대한 커뮤니티 우선참여권, 3. 마을계획권, 4. 커뮤니티 부동산 개발권, 5. 유휴 공공토지 활용 요청권’ 의 5가지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마을 자본’을 지켜 마을공동체를 지속 성장시키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무역적자와 흑자를 따지듯 마을도 내부자원과 외부자원을 팔고 사면서 적자와 흑자를 한 번 따져보자. 마을이 경제적으로 흑자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만들다 보면 마을 안에 새로운 일자리도 생기고 마을에 젊은 사람들도 들어오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자치단체 최초로 ‘마을자본주의 기금’을 제안해본다. 어떤 마을공동체가 공익적 목적을 위해 사업을 제안하면 그 사업 실행을 위해 무이자로 빌려주고 30년 후 상환하게 하는 것이다. 외부의 자금 지원 없이도 마을이 자립적으로 지속가능한 사업을 펼쳐가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가평군의 여러 마을들은 한강수계관리기금, 발전소 지원기금, 송전탑 지원기금 등 다양한 마을기금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기금들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그리고 공공성을 담보하면서 잘 사용하는 마을은 찾기 어렵다. 이미 주민 간 신뢰가 깨진 마을에서 마을기금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분란을 자초하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기존의 마을기금들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마을기금신탁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마을자본주의 기금’ 제도 속에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저성장과 저소득이 지속되는 뉴노멀(New Normal)시대, 마을은 이미 오래 전부터 뉴노멀 시대였다. 그래서일까, 세계는 마을과 로컬리즘을 주목하고 있다. 이미 지난 수십 년 간 저소득 저성장을 경험했던 마을이 소멸의 위기를 극복한 스토리 속에서 현재 세계가 직면한 뉴노멀 시대의 위기를 극복할 변화의 방향과 단초를 찾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전 세계 작은 마을들의 다양한 성공 스토리는 ‘마을자본주의’의 이론적 근거가 될 것이고, 마을의 성공을 가능케 한 로컬리즘은 ‘마을자본주의’의 철학적 배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마을 소멸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평군이 ‘마을자본주의’를 통해 부흥의 기회를 갖게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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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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