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창에서 날아오르는 학

                                                                                

                                                                             전순영

 

 

벽에 걸린 그림 하나,

갈레머리 땋고 자운영 밭에 앉아 나물 캐는 소녀

그림 둘, 들녘에 앉아 김을 매는 소녀

그림 셋, 까만 어둠 ...그랬다 까만 어둠이었다.

 

짐짝처럼 실려온 어린 꽃봉오리들

부들부들 떨면서 가슴에 보따리 하나씩 안고 팽개쳐진

까만 어둠 ......

 

한 평 천막 군용 간이 침대 위에 횟감처럼 누인 몸

주린 독사떼들이 번호표를 손에들고 줄을 선

정액 걸레가 되어 독사 침을 맞고 한 잎씩 둑뚝 떨어져 갔다

 

반항하면 채찍이 나라오고

아기를 가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고 가 묻어버리는

그저 한 마리 미물 이었다

 

먹물 가득한 그 터널 속에서 갈기갈기 찢긴 가슴을 안고

한 걸음씩 또 한 걸음씩  육십 여년을 걸어서

미국 하원의회 단상에 우뚝 섰다

 

죄 지은자는 나와서 무릎 끓어라

죄 지은자는 나와서 무릎 꿇어라

이제 우리는

그 기나긴 시궁창을 뚫고 학으로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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