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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초대 2편 - 혜문스님대한민국 사람이면 공감하고 느낄수 있는 민족적 자존심을 위해 모든걸 바치고
성기철 편집자문위원  |  ipcm@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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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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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초대 2편 - 혜문스님

동영상은 빼앗긴 우리의 문화재를 다시 찾아와 상처받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민족의 혼을 일깨워 주고 국민 모두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준 혜문스님의 자랑스런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40분]


좌담을 나누는 이철학 대표(좌)와 혜문스님(우)

포천미디어 명사초대 두 번째 대담 - 혜문스님 편

  • 일시 - 2012.7.19 /장소 -흥룡사
  • 진행 - 문화관광해설사 이철학 (뷰식물원 대표)
  • 초대 - 혜문스님

혜문스님을 만나다 - 혼이 있는 계란은 바위도 깨뜨릴 수 있다

2010년 6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빼앗아간 우리의 문화재 1천 2백여점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역사적 순간이 있었다.

문화재를 되 찾아온 장본인은 대한민국 정부도 아니요 문화재청 관료도 아니었다.

일본 정부를 상대하며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깨트린 쾌거를 이루어 낸 장본인은 당시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40세가 안된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의 젊은 혜문스님이었다.

혜문스님은 2006년 부터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을 벌인 가운데 정부도 못 한 일을 4년만에 일본으로부터 문화재를 되 돌려받았다. 그동안 일본 정부의 각료와 문화재를 보관중인 박물관 인사들 그리고 교토대 관계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며 문화재 환수 이유에 대해 설득을하고 협조를 이끌어 내었다.

혜문스님은 미래의 한일관계를 위해서 과거 일본이 대한민국에 자행했던 국토 침탈에 대한 사과와 빼앗아간 문화재 소유에 대한 양심 선언으로 잔존해 있는 우리 문화재의 반환을 요구했다. 미래의 한일관계를 위해서라도 반환이 옳다는 것을 일본 관계자들에게 설득하고 다닌 결과 공감을 하던 일본 각료와 의원들이 문화재를 협의끝에 되 돌려 주게 된것이다.

일본이 놀란 혜문스님의 ‘문화재제자리찾기’ 경과 과정은?

혜문스님은 2003년부터 교토에서 유학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오래된 서점상에서 ‘청구사초’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그 내용에는 조선왕조실록이 교토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즉시 우리 문화재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에 이를 찾고자 조선왕조실곡환수위를 조직한것이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 잃어버린 왕조실록은 오대산 사고본 27책이었다. 혜문스님은 곧바로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일본정부와 교토대 관계자를 향하여 수 차례ㅡ이 집회와 가두시위를 거친 끝에 93일 만에 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27책을 되 돌려받는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2004년 일본에서 조선왕조실록 반환 운동의 광경 - 사진 오른쪽 뒤 혜문스님

(조선실록 오대산 사고본은 1913년 일제에 의해 강탈당했다. 관동대지진에 불타 대부분 불에 탄 뒤, 1932년 경성제대에 <보관전환>의 형태로 27책만이 돌아왔다. 그뒤 오대산본은 우리들의 기억속에 완전히 잊혀졌다. 2004년 봉선사 승려에 의해 발견되어,<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가 꾸려져, 2006년 3.3일 정식 출범했다. 반환운동이 전개되자 도쿄대는 서울대에 기증, 2006.7.7일 93년만에 고국의 품에 안겼다. 도쿄대로부터 실록을 기증받은 서울대는 즉시 실록에 '서울대규장각도서'란 도장을 찍었다.-혜문닷컴 http://blog.daum.net/dlfrkrtn 내용중)

조선왕조 실록을 되 찾기 위한 환수 운동을 펼치는 과정과 함께 일본 궁내청에도 조선왕실 의궤가 소장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 또한 2006년부터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를 조직하여 일본 정부 인사와 의회 의원들을 차례로 만나며 '문화재제자리찾기'의 활발한 활동을 동시에 전개한 것이다. 의궤를 찾으려 혼신의 노력을 들인 결과 4년이 되는 2010년 조선왕실의궤는 고국의 품으로 되돌아 오게 되었다. 문화재를 찾기까지 주위 환수위원회와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함께 일궈낸 성과였고 그 중심에는 항상 혜문스님이 서 있었다. 홀홀 단신 일본을 다녀온 비행왕복 횟 수만도 50여 차례나 된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되 찾은 뒤 곧바로 일본정부를 향하여 의궤 반환운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제자리찾기’운동이 4년이 지난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2010년 4월 , 드디어 당시 일본 나토 총리는 사과의 성명과 함께 나머지 우리 문화재를 되돌려 보낸다고 발표하였다.그리고 5월 드디어 혜문스님이 그렇게 고대하던 문화재가 고국의 품에 돌아왔다. 문화재는 명성황후의 장례기록이 담긴 의궤와 표범 카페트 등을 포함하여 총 1천2백여점이었다.

조선왕실 의궤는 고국을 떠난지 89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당시 방송 3사의 카메라는 온통 혜민스님을 주목했고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 것이 되돌아온 기쁨의 감격과 함께 발인반차도와 명성황후의 슬픈 이야기를 아는대로 꺼집어 내며 삼삼오오 술잔을 기울였다.


2010년 4월 방영된 MBC뉴스


MBC 인터뷰에서 문화재를 찾아온 소감을 밝히고 있는 혜문스님


일본 중의원 외무위가 의궤반환동의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혜문스님이 말하는 문화재제자리찾기 의 의미는?

문화재를 되 찾아 온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되 찾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처받은 우리의 민족혼을 되 찾는 일이다라고 혜문스님은 말한다. 상처의 치유없는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부터 시작했다고 말한다.

현재 혜문스님은 2012년 2월에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위치한 흥룡사의 주지로 부임해 왔다.

흥룡사는 신라말 도선이 창건한 오래된 전통의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이다. 흥룡사의 대웅전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염주가 보관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 염주는 지난 7월 강원도 원주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 이 대형 염주의 전체 크기는 7톤 이며 가운데 모 염주는 무게는 240kg , 직경이 74cm의 규모로 현재 기네스북에 등재되어있다. 이 염주는 일본의 재일교포가 2003년에 만든것으로 쓰여진 재료는 아프리카에서 2천년 된 나무라고 한다. 총 3개의 염주를 만들었는데 일본에 하나를 두고 나머지 두 개는 원주에 보관해 왔다가 그중 하나를 지난 7월 흥룡사에 옮긴 것이라고 한다. 이 염주가 만들어진 의미는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이다. 앞으로 북한 묘향산 보현사로 보낼 계획이며 현재 북한과 협상중이라고 한다. 보현사는 서산대사가 은거한 사찰로서, 부처님의 불심이 크게 작용하여 남북통일의날이 하루 빨리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혜문스님은 밝혔다.

우리의 역사와 얼에 얼룩진 상처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정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버젓이 약탈해 간 문화재가 일본에 전시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우리 정부도 1965년 한일협정 이후부터 단 한 건의 문화재도 찾아오질 못했다.

일본 사람들은 그동안 일본의 궁내청 국립,시립박물관이나 대학 도서관에 버젓이 자랑스럽게 전시하고 과거 자신의 식민지 국가였던 한국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한마디로 간단하다 제 물건도 간수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혜문스님은 일본에 우리의 중요한 문화재인 실록과 의궤가 있다는 사실을 알자 견딜수가 없었고 반드시 찾아야겠다는 의지가 작렬했다. 이에 구겨진 상처의 회복을 위한 환수운동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이 시작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역사 문화재의 대표 얼굴인 조선왕조 실록과 의궤가 그리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치있는 일을 추구하고 살아온다. 문화재를 찾아온지 2년이 지났다. 혜문스님이 이렇게 훌륭한 가치있는 일을 해내고서도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받은 상은 단 한 개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 정부에 대해 큰 실망이고 한심스런 일이 아닐 수없다. 대 실망이다. 정부가 못한 일을 개인이 해내고 왔음에도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니 한심한 정부란 생각이 든다. 딸랑 문화재청상 하나 뿐이라니....

그전에 영화에 람보를 본적이 있다. 월남전에 목숨바쳐 싸우고 돌아왔건만 조국 미국은 그에게 관심도 두질 않았다. 정부에서 얼굴 체면치레 때문에 쉬쉬하며 인정을 해주지 않더라도 국민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혜문스님은 국민의 자존심을 되찾아준 장본인이다. 혜문스님의 업적은 후세에 더 길이 높게 평가될 것이다. 실록과 의궤 그 자체의 문화재 가치로 볼때 국보급 물건임에 틀림없다. 중요한 문화재를 찾아온 기쁨도 크지만 동시에 더 위대한 것은 우리의 구겨져 있는 자존심을 되 찾아왔다는 것이다. 식민지 한국의 아픈 흔적이 일본 곳곳 도처에 널려 있어도 있던지 말던지 그냥 아무런 개념없이 살아가는 한국 국민 이란 소릴 들어서는 안된다.

혜문스님은 도처에 널려있느 문화재를 다 회수해오기 위한 노력을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혜문스님의 드높은 애국정신과 나라사랑의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현재 흥룡사에서는 남북통일기원 통일대염주 기원 행사를 음악회와 함께 마당에서 펼칠 예정이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오후 7시에는 장자 특강을 혜문스님이 직접 강의를 무료로 진행한다고 한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가 있기를 바라면서 일동면 도평리 흥룡사에 한번씩 찾아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주신 혜문스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위로의 말도 전하면서 덕담을 나눠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권해본다.
성기철 기자 epstm@naver.com


흥룡사 대웅전


모 염주의 크기는 무게240Kg 직경74Cm이상 이다.

 

흥룡사 - 대한불교조계종

경기도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38번지

031-535-7363

 

[혜민스님의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 일화들...]

1998년 봉선사에서 출가.

2003년 빼앗긴 문화재 조선왕조실록 교토대에 숨어있다는 걸 알게되다.

2003년 일본에 건너가 교토에서 공부를 하는중에 우연히 ‘청구사초’ 라는 도서를 읽게되었고 거기에는 조선왕조 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토쿄대학 도서관에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이후 잃어버린 실록을 찾기로 결심을 하여 환수위를 조직하였고 운동을 시작한 93일만에 조선왕조 실록을 되 돌려 받았다고 한다.

2003년 기업 삼성과 맞서 ‘현등사 사리구’ 제자리 찾기 운동 시작

2003년 교구 내 소속 본말사의 문화재 현황을 조사중 가평 현등사의 사리구가 삼성 리움미술관의 도록에 수록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리구에는 ‘현등사’라는 명문이 적혀 있다. 1년간의 반환 준비 과정을 거쳐 혜문스님은 리움미술관에 사리구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 반환 소송을 벌였고, 결국 여론에 떠밀린 삼성은 사리구를 스스로 반환했다.

2004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환수 활동 착수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에서 간사일을 도맡아 왕조 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되찾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2005년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 본격 시작

혜민스님은 “혼이 담긴 계란은 바위도 깰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2005년에 봉선사 말사인 내원암 관련 ‘친일파 재산 위헌법률심판청구’를 시작으로,'현등사 사리구 반환’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일본이 빼앗아간 우리문화재를 환수하는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을 시작하였다.

2006년 7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27책 환수 받음.

- 현재 서울대 규장각 보관.

2006년 9월 조선왕실 의궤환수회 구성

-일본 궁내청 소재의 ‘조선왕실 의궤’ 환수를 위한 운동 착수.

2006년 핸더슨 컬렉션의 한국 문화재 환수 운동 착수

2008년 11월 국내외 흩어진 ‘ 회암사 옛 문화재’ 제자리찾기 운동 시작.

2009년 1월 핸더슨 컬렉션에 대한 조사.

- 미국 하버드대학교 도서관 방문 보관되어 있는 핸더슨 컬랙션 조사이야기.

(핸더슨은 1948년 한국에 입국, 주미대사관으로 근무했다. 핸더슨은 한국에 머물러 있는 동안 우리나라 가야시대부터 해방 이전 까지의 귀중한 문화 유물을 이루 헤아리지 못할 정도의 엄청 많은 양의 문화재를 수집해서 미국에 가지고 돌아갔다. 혜문스님이 핸더슨 컬렉션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유는 대부분 핸더슨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는 한국의 옛 관료들이 주미대사인 핸더슨에게 뇌물로 넘긴 문화재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핸더슨이 한국을 떠날 때는 , 무사히 그것들을 가져갈 수 있도록 이사짐을 도와준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하버드대학교에는 핸더슨 컬렉션의 주요한 150여점의 도자기를 핸더슨의 부인으로부터 기증을 받아 보관하고 있는 곳이 있다.

혜문스님은 잃어버린 문화재 핸더슨 컬렉션에 관해 알아보고자 2009년 1월 보스톤에 있는 하버드대학교를 방문했다.

핸더슨은 1988년 오래전 사망했고 핸더슨의 부인 마이어 여사도 지난 2007년 사망했다. 다행히 혜문스님은 2009년 1월 하버드 대학 방문시 마이어 핸더슨 여사를 과거에 만나서 취재했던 기자를 만났다고 한다. 마이어 핸더슨 여사가 소장했던 한국 유물에 대한 사진을 제공받기도 했고 그 물건들의 소재에 대해 확인해 보는 성과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2009년 1월 하버드대 방문 당시에는 핸더슨의 중요한 유물들이 불과 2달 전에 대부분 경매로 처분되어 사라진 후였다. 한국의 문화재가 소재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는 사실에 밀려오는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말없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고 혜문스님은 전했다.

2009년 조선 여인 명월이 생식기 표본 폐기 운동 착수.

-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여인 명월이 생식기 표본을 폐기해야 함을 주장.

2010년 1월17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맞 대응 - 서울중앙지법에 소제기

‘여성생식기 표본 보관금지 청구의 소’를 접수.

2010년 5월 조선왕실의궤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 발인반차도 반환 환수

-발인반차도는 명성황후의 2년 2개월에 걸친 장례절차에 대한 기록이 담겨있다.

2010년 8월 24일 봉선사에서 명월이 천도재 진행.

2012년 2월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흥룡사 주지 부임.

2012년 7월12일 통일대염주 이운.

- 세계 최대크기 통일대염주 북한 묘향산 보현사 보내기 운동 시작

혜문스님에 대한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에 대한 이해는 2012년 2월에 출간된 ‘빼앗긴문화재를 말하다’ 책에서 상세한 내용을 접할 수가 있으며 혜문스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dlfrkrtn/ 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기획/ 전체글 - 성기철 기자 epstm@naver.com

영상촬영 - 박정애 기자

 

흥룡사 - 대한불교조계종

경기도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38번지

031-535-7363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 사진은 서울대 규장각 소재임을 밝히는 직인


돌아온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 발인반차도
- 명성황후 2년2개월 동안 진행된 장례절차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후쿠오카 쿠시다 신사 방문(히젠도 전시중) - 닌자 생산소로 알려짐


쿠시다 신사에 보관되어 있는 히젠도 - 명성황후를 살해한 칼


현등사 사리반환 운동 - 뒤 왼쪽 서있는 이가 혜문스님


혜문스님이 현등사 사리를 감정 하고 있다.


회암사문화재 제자리찾기운동 - 사진 가운데가 혜문스님


명월이로 추정되는 홍련의 초상화 1919 - 이 초상화는 당시 이중섭 화백의
스승으로 알려진 이시이 하쿠테 일본 화가의 당시 작품 - 일본 마쓰모토 시립미술관 소장 중
당시 서울 종로 명월관에는 이름난 기생이 있었고 가장 뛰어난 이를 명월이라 불렀다고 한다.

국립과학연구소 정문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있는 혜문스님


생식기가 폐기되자 2010.8월 마쓰모토시립박물관을 찾아가서 기도를 하고 있다.


혜문스님은 2009년 1월 미국 하버드대학교를 방문하여
핸더슨 컬렉션 문화재의 소재를 확인하러 나섰다.


핸더슨 컬렉션 - 이미 경매에 팔려진 조선후기의 석가여래 탱화 작품,
혜문스님이 방문하기 2달전 핸더슨이 가져간 우리의 문화재 대부분이
경매에 팔려나가 소재 파악도 안되는 실정을 알고 돌아왔다.


핸더슨의 집에는 무수한 한국 문화재들로 가득차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1909년 10월26일 오전9시30분 이토오가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
이토오는 가슴 폐부분에 3발의 총탄을 맞아 그자리에서 숨진것으로 알려졌다.


안중근 의사가 사용한 권총과 총알 - 일본 헌정 기념관
총알에 십자가 가 그려진 것은 파고드는 상처가 크고 빠른 납중독으로 인한 사망 효과
를 기대할 수 있기에 안중근 이사가 만주에서 십자가가 그려진 총알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토오 히로부미의 당시 입고 있던 속옷 - 핏 자국이 지금까지 선명하다 -
일본 하기 박물관에 소재. 옷의 상태로 보아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진것으로 보인다.


흥룡사 입구에는 백운산 관광안내도가 있다.


흥룡사 입구에 좌담을 진행할 이철학 대표가 올라가기전 게시판을 보고 있다.


흥룡사를 올라가는 입구에는 돌 계단이 있다.


흥룡사 입구 돌 계단을 지나면 금 불상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흥룡사 대웅전


마당에는 약수터가 있다.


흥룡사 대웅전을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오색 띠는 통일대엽주 행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혜문스님이 기거하는 법당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흥룡사 마당엔 돌탑이 있다.


흥룡사 위쪽 마당에 서있는 불상


흥룡사는 현재 통일대염주를 봉안하여 북한 묘향산 보현사에 보낼 계획을 하고 있다.


통일대염주의 가장 큰 모 염주를 만져보고 있다.(좌로부터 성기철 기자/ 혜문스님)


대웅전 내실 전체에는 통일대염주가 봉안되어있다.


연등 천막 위로 왕(王)이 씌여진 이유는 올해 대통령 선거에
훌륭한 인물의 출현을 기리기 위함에 있다고 전한다.


좌담을 진행한 이철학 대표와 식물에 관심이 많은 혜민스님이
정원의 식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혜문스님을 만나본 소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성기철 기자(좌) 이철학 대표(우))

좌담이 끝난후 환하게 웃고있는 혜문스님

금강초롱 - 백운산 일대에 식재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매주 토요일 오후7시에는 혜문스님이 누구에기나 무료로 장자 특강을 약 1시간 이상 진행한다고 한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여하여 혜문스님의 값진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다.


혜문스님이 2012년 2월 발간한 '빼앗긴문화재를 말하다 ' 도서
총 255쪽 분량으로 혜문스님의 문화재제자리찾기 활동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그동안의 경과과정과 혜문스님의 사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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